엔화 가치 하락 속도가 9월 들어 급격하게 빨라지며 7일 달러당 144엔대를 기록했다. 이틀 만에 4엔이 급락하자 일본 정부가 구두 개입에 나섰으나, 정부가 시장에서 엔화를 사고 달러를 파는 직접 개입에 나설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금융완화 정책을 바꾸거나 직접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시장에 퍼지면서 투기 자금까지 유입되고 있다.
7일 오후 2시쯤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 시세는 144.38엔을 찍었다. 1998년 8월 이후 24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전날 오전 9시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40엔으로 출발한 엔화 시세는 141엔이 됐고, 런던 시장에선 142엔, 뉴욕 시장에선 143엔을 기록했다.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7일 오전 도쿄 시장에서 143엔대로 시작한 뒤 정오쯤 144엔대를 뚫었다.
미국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여 미국이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 데다, 이번 주엔 호주와 유럽 중앙은행도 금리 인상에 나서 엔화 하락에 가속도가 붙은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행과 정부는 적극적 개입에 나서지 않고 있다. 7일 스즈키 슌이치 재무장관이 “최근의 움직임은 다소 급속하고 일방적이다. 강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구두 개입을 했으나 직접 개입을 시사하지는 않았다. 마츠노 히로이치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급속한 엔화 약세가 계속되면 필요한 대응을 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외환 개입을 뜻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본은행은 오히려 최근 들어 시장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국채 매입 액수를 늘려 완화정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비쳤다.
1998년 6월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7엔까지 추락하자 3개월 동안 3조 엔이 넘는 엔화를 매입하고 달러를 매도하는 대규모 시장 개입을 했다. 당시엔 아시아 금융위기에 따른 일본 금융회사의 잇단 파산 등이 엔저의 원인이었다. 지금은 미국의 강력한 긴축정책이 근본 원인으로 엔화뿐 아니라 원화, 유로화 등 전 세계 통화가 공통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이 완화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시장 개입으로 환율을 방어하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국제금융 전문가인 도시마 이쓰오 도시마&어소시에이츠 대표는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 기고에서 “지금까지 일본 엔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외국인 투자자까지 ‘저위험 고수익’이라는 소문을 듣고 대거 신규 참가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일본은행과 재무성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엔 매도가 ‘저위험’이라 판단되고 있다"면서 투자금의 지속적 유입으로 엔화 약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