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 '쥴', 6,000억 보상금 내기로...퇴출 위기는 완전히 못 넘겨

입력
2022.09.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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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보호 위해 학교 후원·광고도 제한
과거 십 대 노린 마케팅으로 부작용 잇따라
개인·주 정부 등과의 소송 수백 건 진행 중

'청소년 흡연 조장' 혐의로 미국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전자담배 '쥴(JUUL)'의 제조업체 쥴랩스가 미 33개 주 정부 등에 6,000억 원이 넘는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합의를 받아들인 주 정부는 지난 2년간 이어오던 쥴랩스에 대한 조사를 끝내기로 했지만, 아직 미 전역에서 제기한 소송 수백 건이 남아있어 퇴출 위기를 완전히 넘긴 것은 아니다.

"기존 담배보다 안전해"…10대 흡연 부추겨

6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에 따르면 쥴랩스는 코네티컷 등 미국 내 33개 주·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지방정부와 총 4억3,850만 달러(약 6,08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합의에는 쥴랩스의 학교 후원과 청소년 대상 광고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들 정부는 '미성년자의 흡연을 부추긴다'는 혐의로 쥴을 2년 넘게 조사해왔으나 합의금을 받고 조사를 마무리하는 데 동의했다. 보상금은 흡연 근절과 니코틴 중독 치료 등에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쥴랩스는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는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우리 약속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2015년 출시된 쥴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3년 만에 미국 전자담배 시장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청소년 흡연을 부추기고, 유해성을 숨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쥴은 △궐련 담배와 달리 단맛이 나는 액상 카트리지 △무료 샘플 △어린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 등으로 십 대를 공략했다. 직원들이 전국 고등학교를 돌며 "기존 담배보다 안전하다"고 홍보를 하다 미 식품의약국(FDA)의 시정 요구를 받기도 했다.

쥴을 필두로 한 전자담배 인기에 부작용도 잇따랐다. 미국 고등학생의 전자담배 흡연율은 2017년 11.7%에서 2019년 27.5%로 뛰었다. 전자담배를 피운 뒤 니코틴 중독에 빠지고 원인 모를 중증 폐병에 걸리는 청소년들의 사례도 쏟아졌다.


영구 판매 허가 받으려면 '산 넘어 산'

이에 FDA는 2018년 "전자담배가 청소년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며 본격 규제를 시작했다. 미성년자에게 전자담배를 판매한 소매점엔 최대 1만1,182달러(약 1,550만 원)의 벌금을 물렸고, 2020년엔 궐련·멘톨향을 제외한 가향 제품을 판매 금지했다. 올해 6월엔 액상 카트리지에서 유해 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로 '쥴 전면 판매 금지'를 명령했다. 앞서 한국을 포함해 11개 국가에서 철수하고 구조조정까지 단행한 쥴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쥴랩스는 즉각 "제품의 유해성과 관련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다"며 항소했다. 미 컬럼비아 항소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FDA 명령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현재 미국에서는 쥴이 판매되고 있다. 다만 쥴이 FDA의 영구 판매 허가를 받기 위해선 전자담배가 궐련 담배를 끊도록 만들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과 청소년에게 중독성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번에 합의한 주 정부 외에 뉴욕 등 9개 주 정부와 쥴랩스의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개인·교육구 차원에서 제기한 소송까지 합치면 수백 건에 달한다. 메레디스 버크먼 전자담배흡연반대부모회(PACEC) 대표는 합의와 관련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쥴의 마케팅 결과 많은 아이가 심각한 니코틴 중독과 물리적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며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이 피해는 되돌릴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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