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한 기계 생명체부터 소금이 그린 조각까지…서울·부산 미술전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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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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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바닥에 하얗게 빛나는 얼룩이 피어났다. 얼룩은 파도가 말라붙은 것처럼 회색빛 바닥 한편에 넓게 퍼졌다. 실수로 흘린 페인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목공풀로 접착한 소금이다. 커다란 전시장 반대편에는 앙상한 각목을 이어붙인 것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서 있다. 나무처럼 보이지만 브론즈(청동)로 만든 작품이다. 조각가 정서영이 올해 새롭게 선보인 작품들이다. 그는 인물상처럼 구체적 형태에 익숙한 관람객이 ‘이것이 조각인가’ 묻게 하는 조각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시처럼 함축적이어서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로 30년간 꾸준히 조각의 영역을 확장해온 정서영의 개인전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11월 13일까지 열린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술장터 프리즈의 아시아 상륙전이었던 ‘프리즈 서울’이 5일 막을 내렸다. 한국의 대표적 미술장터인 ‘키아프 서울’도 6일 폐막했다. 추석 연휴가 곧바로 이어지면서 미술업계는 숨을 고르는 분위기지만 공공 미술관들은 문을 활짝 열었다. 수집가뿐만 아니라 더 많은 대중에게 예술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프리즈 서울을 계기로 방한한 해외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한국 작가를 선보이려는 의도도 있다. 당장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등 프리즈 참석차 방한한 해외 관계자들이 정서영 개인전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추석 연휴 내내 개관하고 13일 휴관한다.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울관에서는 9일부터 기계들이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전시가 펼쳐진다. 1990년대부터 기계 생명체를 만들어온 최우람의 개인전이다. 검은 새가 전시장 천장을 맴도는 아래 머리 없는 지푸라기 인간들이 원판을 둘러메고 웅크렸다. 원판에는 하나뿐인 머리가 올려졌다. 저마다 무릎을 구부리고 펴면서 원판을 기울이지만 머리는 사방으로 굴러다닐 뿐,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작품인 '작은 방주'는 커다란 노들을 움직이면서 혼란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공연을 펼친다.

국현 덕수궁관에서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주로 활동했던 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내년 1월까지 열린다. 전시의 부제 ‘우주를 향하여’와 같은 이름의 연작들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문신(1922~1995년)을 알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조각부터 회화, 드로잉, 판화, 도자까지 모두 230여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현 덕수궁관을 비롯해 과천관, 청주관은 9일부터 12일까지 개관하고 13일 휴관한다. 국현 서울관은 10일 추석 당일에만 휴관한다.






부산은 곳곳이 현대미술을 만나는 전시장으로 변신한다. ‘2022부산비엔날레’가 ‘물결 위 우리’를 주제로 3일부터 65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부산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부산항 제1부두, 영도, 초량에서 25개국 64팀(80명)의 작품이 관람객을 만난다. 주요 테마는 ‘이주’ ‘여성 그리고 여성 노동자’ ‘도시 생태계’ ‘기술의 변화와 로컬리티(지역성)’다. 각각 개항과 피란민의 이주, 산업화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기여자, 압축적 성장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부산의 도시 생태계, 동시에 지구가 당면한 환경 문제 등을 다룬다. 라이스브루잉시스터스클럽(Rice Brewing Sisters Club)이 4월부터 부산에 머물면서 여러 해녀촌에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상부터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필리다 발로의 대형 설치물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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