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업계에 20년째 몸 담고 있다는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즘 업계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는 “전례가 없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나 호들갑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 방산기업의 몸값은 요즘 상종가를 치는 중이다. 올해 1~7월 체결된 국산 무기의 수출계약 규모(약 26조 원, 189억 5,000만 달러)는 2015~2020년 6년 간 해외수주 실적 합계(180억 7,000만 달러)보다 많다.
올해를 빼면 사실 한국 방산장비 수출 실적은 최근 10년 간 답보상태였다. 2011년 23억 8,000만 달러를 수주한 뒤 2020년까지 연평균 29억 8,000만 달러에 머물렀다.
남은 4분기, 그리고 내년 이후에도 한국 방산은 지금의 대박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K-방산'의 앞날은 여전히 밝은 편이다. K방산에 앞으로 어떤 낭보들이 들려올 것인지를 미리 살펴본다.
69년간 휴전 상태를 유지해 온 한국에서 '무기 생산'은 '국군이 필요로 하는 장비 생산'과 동의어였다. 일부 해외로 수출하는 장비가 있었지만, 그 연원을 따져보면 모두 국군이 쓰려고 만든 무기체계에서 시작한 것들이다.
그러나 호주 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은 장갑차 ‘레드백’의 개발 과정은 다른 장비들과 조금 다르다. 육군에서 검증된 K21장갑차 기술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레드백 자체의 계획 단계부터 국내 수요가 아닌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 진행됐다. 수출 전용 무기를 개발한 것은 국내 무기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레드백 장갑차는 100% 수출 수요에 기반해 제작한 국내 최초의 무기체계"라고 평가했다.
개발사 한화디펜스에 따르면 레드백 장갑차는 42톤에 달하는 차체를 복합장갑으로 보호한다. 미사일과 로켓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능동방어시스템도 탑재했다. 국산화율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주요 무장과 센서는 이스라엘제)이 있지만, 수출 전망은 밝은 편이다. 장 연구위원은 "특히 호주와 같은 ‘권역 중심국가’에 수출할 경우, 시장 환경이 비슷한 주변국의 수요도 창출돼 추가 수출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레드백 장갑차를 비롯해 다양한 국산 무기체계가 올 하반기에도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릴 것으로 예상한다. 계약 규모 전망치는 최대 224억 달러(약 31조원)다.
우선 레드백 장갑차의 호주 수출이 성사될 경우 계약 규모는 50억~75억 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에 48기를 공급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는 이집트에 최대 35억 달러, 말레이시아에 7억 달러, 콜롬비아에도 1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수출이 기대된다.
현대로템이 만드는 K2 전차도 노르웨이와 이집트에 총 27억~37억 달러 규모 추가 계약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K2전차는 올해 초 노르웨이의 혹한기 환경에서 성능 평가를 마쳤지만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엔 유도무기 천궁 및 호위함, 30mm대공포 '비호복합' 등이 수출될 것으로 보인다. 예상 계약 규모는 총 60억 달러다.
방산업계가 앞으로 더 넓은 해외 시장을 확보하려면 경쟁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첨단기술 무기체계 수출이 활발해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방산 수출의 근본적인 약점 중 하나로 선진국에 비해 기술집약적 제품 판매가 적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글로벌 방산수출 구조변화와 우리의 대응전략'에 따르면 국내 방산제품의 수출고도화지수는 작년 기준 51.5로 미국(80), 영국·독일·프랑스(60)에 비해 낮다. 보고서는 "유도무기, 항공기부품 등 첨단 품목 수출이 경쟁국 대비 부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미정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실 전문연구원은 "최근 비교적 고도화한 국산 무기체계가 해외 진출에 성공하면서 수출고도화지수는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