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크오일' 임원 추락사…에너지 기업인 의문사 잇따라

입력
2022.09.02 03:56
현지 매체 '극단적 선택'·'실수' 추정했지만
측근 "극단적 선택 가능성 매우 낮다" 증언
루크오일은 전쟁 초기 "빠른 종전" 촉구해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했던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회사의 임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2월 전쟁이 발발한 후 러시아에서는 에너지 기업인들의 의문사가 이어지고 있다.

러 매체 "극단적 선택" 주장…서방 언론 의혹 제기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날 오전 석유기업 '루크오일' 이사회 의장 라빌 마가노프(67)가 모스크바에 있는 중앙임상병원에서 추락해 숨졌다고 보도했다. 마가노프는 심장 문제로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근처를 녹화하는 폐쇄회로(CC)TV는 없었으며, 유서도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익명의 사법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마가노프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가 심장마비 이후 병원에 입원 중이었으며,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현지 매체 '바자'는 마가노프가 난간에서 담배를 피우다 실수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서방 언론은 마가노프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마가노프를 알던 두 명의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했다. 한 루크오일 관계자는 "회사 내에선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믿지만, 이를 증명하는 증거나 문서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통신은 러시아연방 수사위원회에 수사 상황에 대해 질문했지만, 수사위원회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개전 후 거의 매달 '에너지 기업인' 사망 사건

마가노프가 재직하던 루크오일은 국영인 로스네프트에 이어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기업이다. 마가노프는 30년 가까이 루크오일에서 일했으며, 루크오일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바기트 알렉페로프(71)와도 가까웠다. 알렉페로프 회장은 지난 4월 사임했는데, 루크오일이 발표한 '전쟁 반대 성명' 때문이라는 짐작이 나왔다. 전쟁 초기 루크오일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침공을 '비극'으로 표현하면서 "최대한 빨리 무력충돌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기업 관련 인사들의 사망 사건은 거의 매달 발생하고 있다. 앞서 4월에는 이틀 연속으로 가스프롬 자회사 가스프롬뱅크 부사장 출신인 블라디슬라프 아바예프(51)와 가스프롬 지분을 소유한 천연가스 생산업체 노바텍의 전 임원 세르게이 프로토세니야(55)가 숨진 채 발견됐다. 5월에는 루크오일 수석 총괄로 재직하던 알렉산드르 수보틴(43)이 모스크바에 있는 한 무속인의 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7월에는 국영 천연가스 업체 가스프롬과 거래하던 재계 거물 유리 보로노프(61)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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