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편향 논란'에 중심 못 잡는 역사 교육...해 묵은 논쟁 매번 되풀이

입력
2022.09.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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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교육과정 한국사 시안 공개 후
'자유민주 대 민주주의', '정부수립 대 건국'
해묵은 논쟁 또...교육부 "공론화 거쳐 수정"
정치권이 나서서 역사 '공통분모' 확인해야

①"권위주의 정부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면서 민주주의 발전이 이루어졌음을 파악한다."(2009년)
②"1960년대 이후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성장 과정을 이해하고"(2011년)
③"전후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며 자유 민주주의적 기본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민주화 운동"(2015년)
④"5·16 군사 정변 이후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정권에 맞서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과정"(2018년)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이룩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일까, 민주주의일까. 이 질문에 대해 고등학교 역사 교육과정이 내린 답은 위와 같이 '정권마다 다르다'였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으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대사 해석을 담으면서 역사 교육과정은 5년보다도 짧은 주기로 주요 내용이 바뀌었다. 오락가락하는 역사 교육으로 교사와 학생이 혼란스러운 것은 물론 공동체 구성원 간의 역사 인식에도 격차가 생겨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학계와 정치권이 모여 역사 교육의 공통분모를 찾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따라 요동치는 역사 교육과정

교육부가 지난달 30일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의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시안을 공개하면서 편향 논란에 또 불이 붙었다. 이전 정부에서 선정된 연구진이 작성한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 '(6·25)남침' 등의 표현이 빠지면서 '좌편향 역사 알박기'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러자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공론화를 토대로 수정, 보완하겠다"며 수정 의사를 밝혔다.

이 같은 역사 교육과정의 편향성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고 이번에 논란이 된 개념도 교육과정마다 일관성 없이 요동쳤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건국)으로 볼 것이냐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쓰였지만, 박근혜 정부 시기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현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개정될 때는 다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회귀했고 올해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유지됐다. 건국 기점을 임시정부 수립(1919년)으로 볼지, 1948년으로 볼지를 둔 '건국절 논쟁'이 교육과정에도 고스란히 재연된 것이다.

'남침' '자유민주주의'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로 정권마다 들어가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고등학교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선 6·25 전쟁에 대해 '남침'이라는 표현이 함께 쓰이지 않았으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선 '북한 정권의 전면적 남침으로 발발한'이 들어갔고 2018년 개정 때도 '남침으로 시작된'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다가 이번에 빠졌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 개정 교육과정에는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었다. 이때 바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민주주의가 됐다.


"교육과정 갈아엎어야" vs "설마 북침이라고 가르치겠나"

이에 따라 보수 정권 때는 '우편향', 진보 정권 때는 '좌편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교육계나 역사 전문가들의 입장도 관점에 따라 엇갈린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남침 삭제는) 북한하고 중공군을 두둔하는 건데, 반(反)대한민국적"이라며 "(시안을) 버리고 새로 짜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남침 같은 표현은 시안에 없어도 다 쓰는 표현이다. 여태까지 교과서에서 남침이 아니라고 한 교과서가 하나도 없지 않나"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또 교육과정을 정치화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사 교육도 사회 대타협" 독일 '보이텔스바흐 협약' 모델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을 뜯어고치는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하지 말고, 현대사 교육의 '공통분모'를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나서서 찾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였던 서독에서 각 정파가 모여 정치교육의 최소조건을 확정한 1976년의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 협약'이 모델로 꼽힌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정치인이 주도했고, 참여한 연구자도 정치 성향에 따라 정확히 안배됐다"며 "소모적 이념 논쟁을 끝내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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