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앞으로 비행기 환승 없이 갈 수 있게 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년 넘게 여행을 기다려 온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부다페스트에 가려면 외항사 항공기를 타거나 인접국 체코 프라하 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야 했지만, 이젠 곧바로 갈 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이 다음 달 3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여객 노선을 신규 취항한다고 7일 밝혔다. 출장 고객이 많은 헝가리 노선을 통해 유럽 노선의 경쟁력을 얻고 동유럽 신(新)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산이다.
대한항공은 인천~부다페스트 노선에 269석 규모의 보잉 787-9 기종을 투입한다. 10월 한 달 동안 주 1회 운항하다가 같은 달 29일부터는 매주 두 차례 오간다. 다음달 3일 첫 운항을 시작으로 같은 달 25일까지 월요일 오전 11시 25분 인천공항을 떠나 현지시간 오후 5시 5분에 도착한다. 돌아오는 편은 화요일 오후 7시 15분 출발해 다음날 오후 12시 50분에 인천공항에 내린다.
대한항공은 승객 수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부다페스트 취항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다페스트는 관광객은 물론 비즈니스 관련 출장이 많아 유럽에서도 인적 교류가 활발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에 따르면, 헝가리에는 삼성SDI와 SK온 등 배터리 업체와 한국타이어, 솔루스첨단소재, 동화 등 260개가 넘는 한국 기업이 나가있다. 헝가리 정부의 자동차 제조업 육성과 투자 정책이 기업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유럽 대륙의 가운데에 있는 지리적 위치를 활용하면 물류에서 이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헝가리 입장에서도 한국 기업은 두 팔 벌려 반기는 대상이다. 전기차 배터리 투자로 한국은 2019년 헝가리 외국인 투자 1위 나라에 올랐고, 2020년에도 3위를 기록하는 등 큰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김익중 부다페스트무역관은 지난해 발표한 2020년 헝가리 외국인 투자 동향에서 "최근 SK이노베이션(현 SK온)은 헝가리 그린필드 투자 역사상 최대 금액인 22억9,000만 달러 규모의 3차 투자를 발표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린필드 투자는 외국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중 하나로, 기업이 생산공장이나 시설, 법인 등을 직접 설립하는 해외직접투자 방식이다.
부다페스트 취항 소식에 여행 카페에도 기대감이 비쳤다. 회원수가 104만 명을 넘는 네이버 여행정보 카페 '스마트컨슈머를 사랑하는 사람들(스사사)'에는 헝가리행 항공권 발권 인증 게시글과 성탄절 여행 계획, 마일리지를 이용해 프레스티지 항공권 예약에 성공한 사례 등이 올라왔다.
여행사들도 헝가리 상품을 재구성하느라 바쁘다. 육현우 모두투어 이사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그동안 동유럽은 외항사 위주로 구성돼 있었는데, 부다페스트 직항이 생긴 뒤 새로운 상품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부다페스트 노선은 2년 전 취항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에 가로막혀 뜨지 못했다. 대한항공은 2020년 2월 헝가리로 가는 화물기를 띄웠고, 같은 해 5월 여객기도 띄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2년 5개월의 기다림 끝에 공식 취항하게 된 것. 코로나19에 가로막혔던 부다페스트 노선은 다시 기지개를 켤 수 있을까. 마침 정부가 3일부터 해외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음성 확인서 제출 의무를 없애면서 관광객도 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PCR 의무 제출 폐지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31일 항공주는 일제히 올랐다. 대한항공은 전 거래일 대비 2.87% 오른 2만6,850원에 거래를 마쳤고, 아시아나항공은 3.39% 오른 1만5,250원, 제주항공은 6.46% 오른 1만5,900원, 티웨이항공은 2.99% 오른 2,065원에 거래를 마쳤다.
취항 직후 부다페스트 노선이 호재를 만난 건 약 20년 전 프라하 노선 취항 당시와 닮았다. 대한항공은 2004년 5월 헝가리 인접국인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취항했다. 삼성전자와 기아차가 슬로바키아에, LG와 필립스의 합작사인 LG필립스가 헝가리에 LCD 공장을 설립하는 등 동유럽의 관광객과 화물 이동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던 때다. 유럽 내 주요 도시와 쉽게 연결되는 유럽 허브 도시라는 이점도 고려됐다.
그런데 출장 등 비즈니스로 오가는 고객을 믿고 동유럽 시장 개척 차원에서 다소 '실험적'으로 취항한 프라하 노선은 이듬해 뜻밖의 호재를 만났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시청률이 20%를 넘어서면서 관광객이 더해져 탑승률이 훌쩍 뛴 것이다. 취항 첫 해 64%였던 탑승률은 드라마 방영 이후 90%로 수직 상승했다.
대한항공은 여행 회복 추세에 맞춰 2020년 3월 이후 운항을 중단했던 중동과 동남아 지역 주요 노선도 잇따라 재개한다. 인천~두바이 노선과 인천~푸켓 노선은 다음달 1일부터 탑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