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포대·생수통 지고 계단으로... 뇌출혈 숨진 배달 근로자 '산재'

입력
2022.08.30 10:39
3개월간 월 300건 이상 배달하다 뇌출혈 사망 
유족, 유족급여 장의비 신청했지만… 공단 거부
법원 "업무와 질병 인과관계… 공단 처분 위법"

동네 마트에서 한 달에 300건 이상의 배달하다 숨진 30대 남성에 대해 법원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인천지법 행정1-3부(부장 고승일)는 29일 배달 일을 하다가 뇌출혈로 숨진 A(사망당시 39세)씨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A씨 사망은 만성적인 업무 부담과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산업재해”라면서 공단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20년 4월 출근 준비를 하다가 코피를 쏟았지만 지혈이 안 돼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엿새 뒤 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이 발병해, 한 달간 투병하다 숨졌다. 결혼 1년 만이었다.

A씨는 투병 전 동네 마트에서 3개월간 배달 일을 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주일 중 하루를 제외하고 근무했다. 하루 평균 10~14시간씩 3개월간 휴일을 빼면 월 300건 넘게 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가 배달하는 마트 주변 동네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나 주택이 많아, 생수 묶음이나 쌀포대 등 무거운 물건을 계단을 이용해 배달하는 경우가 잦았다. A씨는 마트에 들어오는 물품 정리와 진열도 맡았다.

A씨 사망 이후 부인은 2020년 7월 근로복지공단에 “남편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 측은 “A씨가 퇴사한 뒤 일하지 않으면서 휴식 중 발병했다”며 “퇴사 직전 업무부담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에 A씨 부인은 공단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는 매주 평균 60시간 이상 근무했고 배송업무는 육체적 부담이 큰 작업에 해당한다”며 “마트 측은 A씨가 출혈로 출근할 수 없었던 당일에 문자를 보내 해고를 통보했는데, 이는 부당해고로 판단된다”고 판단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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