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성이 선제 공격 논란이 있는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사실상 전제로 한 내년도 예산안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예산안에는 사정거리가 1,000㎞가 넘는 장거리 미사일을 1,000여 기 양산해 배치하고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계획도 담겼다. 현실화하면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일본의 ‘전수방위’ 원칙은 사실상 무력화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요미우리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방위성은 오는 31일 제출할 예정인 2023년도(2023년 4월~2024년 3월) 예산 요구안을 최종 정리해 22일 여당 간부에게 전달했다.
방위성은 역대 최대인 5조5,947억 엔(약 54조6,900억 원)의 예산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를 위해서 구체적인 금액을 표기하지 않은 '사항 요구'도 예산안에 담았다. 최종 예산은 3대 안보 전략문서 개정 작업을 거쳐 연말께 결정되는데, 6조 엔이 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항 요구’에는 일본 방위력을 높이기 위해 사정거리가 긴(장사정) 순항 미사일 등을 양산해 다수 보유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현재 육상자위대가 보유한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정거리를 현재의 백수십㎞에서 1,000㎞ 정도로 늘리고 함정이나 전투기에서도 발사할 수 있도록 미사일을 개량한다는 계획이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일본은 장사정 순항 미사일을 1,000발 이상 보유해 난세이제도 및 규슈 등지에 배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북한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사정 미사일의 다수 보유는 사실상 일본의 '선제공격 능력' 보유로 해석된다. 일본은 적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 확실할 경우 적 기지를 공격하는 '반격 능력' 보유라 설명하고 있지만, 적이 공격 전 미리 타격한다는 점에서 일본이 지켜 온 '전수방위' 원칙은 무력화된다. 방위성이 사실상 선제공격 능력 보유를 전제로 예산안을 짰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은 극초음속 미사일도 연구·개발하기로 했다. 이 미사일은 낮은 고도에 변칙 궤도로 비행해 적이 요격하기 어려워, 전쟁터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지난달 가고시마현 우주공간 관측소에서 시험 비행한 ‘스크럼 제트 엔진’은 순항형 극초음속 미사일에 적용할 수 있는 엔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방위장비청은 이 연구에 18억 엔(약 176억 원)을 지원했다.
일본은 적의 극초음속 무기를 요격하기 위해 개량형 중거리 유도탄을 이지스함에 탑재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일본은 이지스함 2대를 건조할 예정인데, 여기에 육상자위대 03식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중SAM)을 개량해 활용할 방침이다. 이 밖에 정찰이나 탐지 목적이 아닌 공격 목적의 무인기를 처음으로 도입하는 내용도 예산 요구안에 들어 있다.
선제공격 논란이 일고 있는 반격 능력 보유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은 전수방위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군사평론가인 마에다 데쓰오 전 도쿄 국제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자위 범위를 넘는 장비라는 인상을 주면 주변국의 일본에 대한 위력 시위가 늘어나고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 유사사태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일본 여론이 방위력 강화에 동조하는 쪽으로 바뀐 데다, 미국이 일본의 방위력 증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일본의 방위력 강화는 정부 의향대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민당 안보조사회는 반격 능력 보유와 모순된다며 지난 4월 전수방위의 명칭과 해석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