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관전기들을 살펴보면 한 수의 무게가 엄중했다. 큰 실착으로 느껴지는 수를 두었다면 이미 판을 그르쳤으며, 회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매 수마다 몇 집 실수인지 드러나는 요즘 시대에는 실착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졌다. 단 한 번의 실착으로 판을 그르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대개 판을 그르치는 이유는 이미 두어버린 실착에 매몰된 채 그것을 이어 나가다 생기는 경우가 많다. 안 되는 축은 나가지 말아야 하듯, 실착을 두었다면 실착과 이어진 사고의 흐름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
박정환 9단은 백1에 팻감을 사용하며 패를 이어 나간다. 팻감이 모자란다고 여긴 강승민 8단은 흑4, 6으로 중앙을 차단한 뒤 흑12에 한 칸 뛰었는데 이게 큰 판단 착오였다. 9도 흑1에 젖히는 팻감을 사용한 후 흑7로 중앙을 가볍게 행마할 장면이었다. 실전 흑10까지 중앙 흑이 심하게 뭉치며 우형이 됐다. 흑16의 선수 활용을 통해 국면 전환에 나섰지만, 박정환 9단은 실리균형을 이미 무너뜨렸다는 것을 알고 백17, 19로 좌상귀 넉 점을 포기한다. 백27까지 실리로는 흑이 덤을 부담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흑28의 중앙 응수타진에 백29는 다소 위험한 대응. 10도 백1을 선수하는 것이 확실했다. 흑이 우변을 받지 않으면 백3의 치중이 성립한다. 강승민 8단은 실전 흑30, 32로 연결을 차단하며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정두호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