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기차 레이싱 대회 'ABB FIA 포뮬러E 챔피언십'(포뮬러E)이 국내에서 처음 개최됐다. 이 대회는 그동안 중국과 미국, 독일, 영국 등 전기차 강국에서만 열렸다. 그만큼 국내 전기차 산업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최 측의 미숙한 운영이 '옥의 티'였다는 평가다.
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서 '포뮬러E 서울 E-프리'가 개최됐다. 이번 대회는 '2021~2022 포뮬러E' 시즌 마지막 대회이자 결승전이다. 이날 열린 경기는 2014년부터 시작된 포뮬러E의 100번째 경기라는 의미도 있다.
포뮬러E는 모든 팀이 동일한 섀시를 쓰지만, 배터리를 제외한 동력계통(파워트레인)을 규정 안에서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레이싱 머신은 최고 출력 250㎾, 최대 속력은 시속 280㎞, 드라이버 포함 최소 중량은 900㎏(배터리 385㎏ 포함)이다. XALT의 고전압 배터리(54㎾h)를 적용, 45분 경기를 충전 없이 달릴 수 있다. 또 레이스 중 △어택모드(특정 구간에서 30㎾ 추가) △팬부스트(실시간 투표 상위 5명에게만 5초간 20㎾ 추가) 등을 통해 성능을 증가시킬 수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포뮬러E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은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산업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 모터스포츠가 자동차와 관련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것처럼, 포뮬러E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모터스포츠는 양산차에 적용할 신기술을 시험해보는 '테스트베드'가 된다. 또 경기에서 얻은 각종 정보(데이터)를 신차 개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포뮬러E 참가 업체들은 확보한 데이터를 신형 전기차 개발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태그호이어 포르쉐 포뮬러E 팀 관계자는 "포뮬러E 대회에서 에너지 효율, 열 관리, 소프트웨어, 조향 등에 대한 기술적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며 "포뮬러E 기술은 현재 양산 중인 전기차 '타이칸'에도 일부 적용됐고, 새로운 모델 개발에도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충전에 대한 기술과 산업 발전도 기대된다. 실제 전기차 보급 확대로 인프라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충전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과거 중소기업 중심이었던 전기차 충전 시장은 현재 △삼성(에스트래픽) △현대차·롯데·KB(특수목적법인) △SK(시그넷·에버차지) △LG·GS(애플망고) 등 대기업 중심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포뮬러E 공식 스폰서인 'ABB(스위스)' 등 해외 기업들도 국내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준호 ABB코리아 대표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충남 천안 ABB 스마트팩토리에 내년 상반기 중으로 급속·완속 충전기를 구축, 국내 전기차 사용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시범운영할 것"이라며 "국내 대기업들이 발다퉈 진출할 만큼 전기차 충전 시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우리도 진출을 결정했고, 현재 규제, 법규, 인증 등에 대해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운영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주최 측인 포뮬러E코리아는 대회 준비부터 선수 인터뷰, 기자간담회 일정을 갑작스레 바꾸거나 취소하며 불안감을 키웠다. 또 경기장 공사가 대회 전날까지 마무리되지 않았다. 대회 첫날 발생한 8중 추돌사고도 도로 공사와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주최 측에선 "8일 폭우로 주경기장 아스팔트가 파손돼, 급하게 보수한 것"이라며 "사고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고객 안내나 복잡한 동선도 문제가 됐다. 매표소가 알려진 것과 다른 곳에 있거나, 출입구 위치가 바뀌면서 관람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입장권 가격도 뒷말이 컸다. 가격을 해외 대회보다 3, 4배가량 비싸게 책정했다가 판매가 시원치 않자 할인에 나섰고, 그럼에도 흥행이 안 되자 결국 무료로 뿌렸다. 또 경기를 중계해주는 전광판이 안 보이는 VIP석 배치도 문제였다.
대구에서 온 신모(67)씨는 "비싼 표를 선물받아서 기분 좋게 구경 왔다가, 관람석을 확인하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며 "비도 피할 수 없고, 경기도 안 보이는 자리를 무슨 이유로 몇 배나 비싼 VIP석으로 만든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