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주민들을 몰아놓고 총을 난사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당시 피해자와 목격자 증언이 국내 법정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들은 "한국군의 학살로 마을 전체가 불탔다"며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심리로 9일 열린 국가배상소송 변론기일에 참석한 베트남인 응우옌티탄(62)씨와 응우옌득쩌이(82)씨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에 대한 한국군의 학살 행위를 증언했다. 당시 학살 사건과 관련해 베트남 현지인의 증인신문이 이뤄지기는 처음이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응우옌티탄씨는 이날 법정에서 "한국 군인이 소리지르면서 수류탄을 던질 거니 가족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위협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8세였던 응우옌티탄씨는 2015년부터 한국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한국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은 응우옌티탄씨가 지목한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 들어가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74명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응우옌티탄씨는 법정에서 한국군이 가족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칼로 찌른 뒤 차례로 집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본인도 한국군 총격으로 복부에 부상을 입었지만, 집이 불타는 장면을 보고 도망쳐 생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응우옌티탄씨는 "여전히 통증이 지속돼 학살 당시 상황을 잊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당시 군인들이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대화를 나눠 한국군임을 알게 됐다면서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와서 거짓말을 하겠냐"고 호소했다.
남베트남 민병대원이었던 응우옌득쩌이씨는 사건 당일 한국군이 퐁니마을 주민 수십 명을 살해하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무전기를 통해 한국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죽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근처로 갔다"며 "망원경을 통해 한국 군인들이 주민들을 죽이는 모습을 봤다. 한국말로 고함치는 소리도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들은 대한민국 군인으로 위장한 베트남민족해방전선 사람들이 아니었다"며 "군인들 말도 한국말인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재판에 앞서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도 가졌다. 응우옌티탄씨는 "저는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 피해자이자 생존자"라며 "학살은 한국군에 의해 일어났고 학살로 가족 5명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응우옌득쩌이씨는 "한국군은 주민들을 몰아놓고 총을 난사했다"며 "마을 전체에 집 한 채만이 남았다"고 했다.
응우옌티탄씨의 소송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 사건은 미군도 분노해 자체 진상보고서가 작성돼 내셔널 아카이브(국립기록보관소)에서 확인이 가능하다"며 "해당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응우옌득쩌이씨가 목격한 사상자들 모습이 담긴 사진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임 변호사는 "사실관계 입증에 있어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한국군에 의한 피해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한국군으로 위장한 베트남군이 민간인을 공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한국군이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하더라도 퐁니마을 주민들을 적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