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학생들의 졸업 3년 후 소득을 성별에 따라 집계한 결과, 똑같은 학위를 따고도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전공 분야가 7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고, 출산·양육 부담으로 일을 덜해서 격차가 발생한다는 통설이 깨진 것이다.
8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방정부 학자금 지원을 받아 2015년과 2016년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딴 170만 명의 졸업 3년 후 임금을 추적해 집계했다. 출신 대학은 2,000곳이었고, 전공 분야는 1만1,300여 개였다. 조사 대상 전공 분야 중 75%에서 남성의 임금 중간값이 여성의 중간값보다 높았다. 남성이 여성보다 10% 이상 많은 임금을 받는 전공 분야도 50%나 됐다.
성별 임금 격차는 특정 전공을 가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20개 전공 학위 취득생의 소득을 분석해 보니, 16개 전공에서 남성 졸업생의 수입이 여성보다 높았다. 조지타운대 회계학과를 보자. 졸업 3년 뒤 남성의 연봉은 여성보다 55%(약 7,200만 원) 많았다. 미시간대 법대를 졸업한 남성(16만5,000달러)은 여성(12만 달러)보다 37%(약 6,000만 원) 더 많이 벌었다.
이 같은 결론은 "여성의 임금이 낮은 것은 여성의 선택 때문"이라는 주장을 허문다. 우선 ①여성이 출산과 양육 때문에 노동 부담이 덜한 저임금 일자리를 선택한다는 가설을 보자. 이번 통계는 졸업 후 3년 차의 임금만 집계했기 때문에 출산·양육을 임금 격차의 주원인으로 보기 어렵다. 여성이 졸업 후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확률이 가장 높은 신학대학을 집계에서 제외해도 73% 분야에서 남성이 졸업 3년 후 더 많은 소득을 올렸다.
②여성은 단순노동 같은 저임금 직종에 더 많이 몸담기 때문에 임금도 덜 받는 것일까. 이 역시 근거가 취약해졌다. 같은 학교와 학과 출신 남녀 학생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졸업 후 같은 직종에서 종사할 확률이 높은 특수교육 석사 졸업생 사이에서도 남성이 더 많은 임금을 받은 것은 '직종'이 결정적 변수가 아님을 보여준다.
취업 시장의 암묵적 성차별이 남녀 임금격차의 결정적 원인일 수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샌안토니오대 치의학과를 졸업한 여성 아니사 마레디아는 "구직 과정에서 면접관들은 주로 여성 지원자들에게만 결혼 여부와 가족계획을 물었고, 남성이 여성보다 빨리 뽑혔다"고 말했다. 휴스턴대 석유공학과를 졸업한 록산 마리노는 "직업 박람회에서 현장직을 원한다고 상담하자, 채용 담당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근무 시간이 길고 쉬는 시간도 없는데 괜찮겠느냐'는 말을 반복했다"고 성토했다.
소득 격차는 대학생들이 성별 '직업 적합도'와 관련한 사회적 편견을 내면화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IZA노동경제 연구소는 1만 명의 직업 전문가가 대학생 구직자에게 하는 조언을 분석했다. 구직자가 여성일 때 '일과 삶의 균형' 관련 충고를 더 많이 듣고, 상담 후 처음에 희망했던 일자리를 단념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을 고를 때 여성이 남성보다 돈 대신 열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거나, 임금 협상을 덜 공격적으로 한다는 등의 요인도 언급됐다. WSJ는 "임금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면서 "광범위한 학위·전공 종류에 걸쳐 성별 임금격차가 나타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