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받느라 못 피해"... 이천 상가건물 화재로 5명 숨져

입력
2022.08.0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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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서 난 화재 연기 4층 투석병원으로 유입
갈비뼈 골절·의족 고령 환자, 거동 불편 참변
50대 여성 간호사, 환자들 끝까지 돕다 희생

5일 경기 이천시의 한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42명이 다쳤다. 불은 1시간여 만에 꺼졌지만, 3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연기를 흡입한 4층 병원 투석 환자들이 제때 대피를 하지 못해 인명피해가 컸다. 경찰은 작업자 과실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사망자들의 명복을 빌며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소방시설 설치기준 등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스크린골프장 철거 작업 중 발화

소방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17분쯤 이천시 관고동의 4층짜리 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던 3층 스크린골프장에서 시작됐다. 작업을 하다 천장에서 불꽃이 튀자 작업자 3명이 자체 진화에 나섰으나 실패했고, 곧장 119에 신고했다. 장재구 경기 이천소방서장은 브리핑에서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철거 작업 도중 천장에서 스파크(불꽃)가 튀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운철 경기남부청 과학수사대장도 “감식 결과 3층 골프연습장 입구에 있는 1번 방에서 처음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전기적 요인과 작업자 과실 등 다양한 원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1시간 10분 만인 오전 11시 29분쯤 진화에 성공했다. 화재 건물 건너편에서 현장을 목격한 주민은 “3, 4층 건물에서 검은색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고, 119구조대가 4층 건물 유리창을 깨고 사람들을 구조했다”며 급박했던 사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희생자는 고령 투석환자들... 빠른 대피 어려웠다

희생자가 다수 나온 건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 때문으로 파악됐다. 불길이 4층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다만 연기가 건물 내 통로를 타고 다른 층으로 유입되면서 1, 2층에 있던 입주자들도 일부 연기를 흡입했다. 불이 난 스크린골프장과 연기가 퍼진 병원 모두 화재 초기 대응에 필수적인 스피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소방벨이 울리자 나머지 층 사람들은 거의 자력으로 대피했지만, 환자 33명과 13명의 의료진이 있던 4층 투석전문 병원은 그렇지 못했다. 투석기가 작동하고 있어 거동이 불편했던 탓이다. 건물 내 상점 주인은 “바늘을 몸에 그대로 꽂은 채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대피하는 병원 환자들을 여럿 봤다”면서 “간호사들의 구조 요청 소리도 들렸다”고 말했다.

사망자 5명 중 4명도 60대 이상 투석환자들이었다. 실제 숨진 김모(62)씨는 당뇨병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차고 있었고, 박모(78)씨는 최근 갈비뼈 골절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간호사 현모(50)씨는 환자들 대피를 돕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 서장은 “투석은 중간에 바로 끊을 수 없다고 한다”면서 “연기가 차오르는 와중에도 의료진이 환자 옆에서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중상자 3명을 제외한 경상자 39명은 병원 치료를 받고 대부분 귀가했다.

이상민·김동연 현장 찾아... 경찰 70명 전담팀 편성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와 김동연 경기지사는 즉시 화재 현장을 찾아 수습 대책을 점검했다. 이 장관은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경찰은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 사상자과 가족 지원 등 제반 사고수습 조치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지사도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방에 최우선을 두겠지만,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초기에 바로 진압하고 수습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노규호 수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70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꾸려 본격적인 사고원인 조사에 들어갔다.

이종구 기자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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