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윤석열 대통령의 회동이 무산되면서 4일 "윤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펠로시 의장을 면담하리라 본다. 아니면 '정치 9단' 자리를 내놓겠다"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호언도 무색해졌다. 박 전 원장은 5일 윤 대통령의 결정은 물론, 펠로시 의장의 입국 때 한국 측에서 아무도 나가지 않아 문제가 된 '의전 홀대' 논란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한 박 전 원장은 전날의 발언에 대해 "강하게 권한다는 의미에서 베팅을 해 봤다"면서 "제가 틀려서 정치 9단증을 내놓아서 억울한 게 아니라, 과연 이런 식의 외교가 맞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만약 원래대로) 지방에서 휴가 중이라면 어렵겠지만,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고 전화를 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전 원장은 전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는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이 중국을 고려한 '페인트 모션(눈속임)'이라면서 결국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면담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 전 원장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면담하지 않은 것이 중국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평가에는 "이미 중국을 의식한 제스처는 다 했지 않았냐"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을 향해 "말로는 한미동맹을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이렇게 하고 있는가. 그런다고 해서 중국이 우리를 좋아할 것인가"라며 펠로시 의장을 면담하지 않은 데에 실익이 없다는 시선을 보였다. 그는 "현재 한국이 살 길은 첫째는 한미 동맹이고, 둘째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다. 여러 가지 외교가 있었지만, 그래도 (펠로시 의장을) 만났어야 된다"고 말했다.
'의전 홀대' 논란에 대해서도 박 전 원장은 같은 날 방송에 출연한 여러 야권 전문가들과 달리 펠로시 의장 입국 현장에 한국 측 관계자가 없었던 것은 잘못됐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미국 인사가) 오산 미군기지 비행장으로 착륙할 때는 대개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면서 "늦은 시간이고 하니 생략해 달라고 했겠지만, 펠로시 의장이다. 당연히 나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통령실과 국회의장실은 "국회 의전팀이 공항에 마중을 나가려 했지만, 미국 측이 도착 시간이 늦은 점과 도착지가 미 공군기지임을 감안해 사양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박 전 원장은 "우리 국회의원들의 외교가 미국 상하원을 만나는 거다. (정부에서) 간곡하게 얘기해서 나가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야 한다). 외교부 장관이 회의 나가 있으면 상대가 될 수 있는, 국회 부의장이나 외교부 차관이 나갔으면 어땠을까"라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 때 외교부 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의전 논란에 대해 "손님의 뜻을 존중했을 거라고 보는데 그게 왜 결례일까"라며 "미국 주요 인사가 서울에 올 때마다 회담의 본내용과 그 의미를 짚어 보는 것보다 부대행사의 형식에 너무 몰입해서 안타깝다"라고 평했다. 다만 최 교수 역시 "외교는 만남이 기본이고, 우리 입장을 설명할 수 있었던 기회"라면서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면담 불발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같은 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등장한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도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서 건너올 때 보안을 요했을 것이고, 도착 시간을 (한국에) 미리 통보 못 했을 것이다. 한두 시간 전에 우리 국회의원을 나오라고 하는 것도 결례다"라며 도착 의전 부재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옹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