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죽곡정수장에서 외주업체 노동자와 공무원이 밀폐된 저류조 청소에 나섰다가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진 가운데, 사전에 유독가스를 측정해야 하는 법 규정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작업 전 반드시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도록 돼 있지만, 사고 당시 계측 장비가 차량 안에 놓여 있었고 배터리마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죽곡정수장 질식 사고를 수사 중인 고용노동부 대구지방고용노동청 등에 따르면, 지난 20일 사고 현장 주변에서 주차된 차량 안에 산소 농도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는 장비가 발견됐다. 스마트폰보다 약간 큰 크기로 휴대가 용이한 계측 장비는 배터리마저 다 닳아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산업안전보건법령에는 밀폐공간 작업 때 관리감독자를 명확히 지정하고, 내부가 안전한 상태인지 확인하도록 돼 있다. 환기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해도, 반드시 산소 농도와 황화수소 등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해야 한다.
대구노동청 관계자는 “사고 현장에는 계측 장비가 없었고, 당일 차량 안에서 발견됐다”며 “환기를 시켜서 괜찮을 것으로 보고 작업자들이 공기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진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선 기준 수치인 15ppm의 69배가 넘는 황화수소 1,048ppm이 검출됐다. 황화수소는 유기물이 썩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색 기체로, 700ppm 이상에 노출되면 호흡정지로 사망한다. 문제는 공기보다 무거워 밀폐된 공간에선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냄새를 맡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청소 작업 때는 장시간 환기 후에도 반드시 장비로 농도를 측정해야 한다.
외주업체 노동자들과 공무원들은 공기를 공급하는 마스크 등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고, 먼저 들어간 동료가 쓰러졌을 경우 임의로 구조해선 안 된다는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대구노동청과 경찰은 이들이 안전 수칙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작업에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관련 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규정 준수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 중”이라며 “사고 관련자를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과실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전 9시 45분쯤 달성군 다사읍 죽곡정수사업소의 침전물 찌꺼기 저장 저류조의 지하 2층(깊이 2.5m)에서 외주업체 노동자 1명과 공무원 2명이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노동자 1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고 발생 이날 오전 11시쯤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