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내부 횡령 사건에서 직원이 빼돌린 금액이 약 7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 한 명이 8년 동안 거액을 빼내는 사이 인사ㆍ공문서ㆍ직인ㆍ결재 등 곳곳에서 범행을 막을 수 있었던 우리은행의 관리체계는 '먹통'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범인은 은행 자금을 마치 자기 돈을 빼가듯 인출했고 유용했다. 26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우리은행 횡령 사고에 대한 검사 결과(잠정)’다.
이날 금감원에 따르면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직원 A씨가 저지른 횡령 금액은 697억3,000만 원에 달했다. 애초 우리은행이 금감원에 보고한 A씨의 횡령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 약 614억 원이었는데, 금감원 검사에서 추가로 83억3,0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A씨의 범행은 8년에 걸쳐 교묘하게 이뤄졌다. 첫 범행은 2012년 6월에 발생했다. 우리은행이 관리 중이던 B사 출자전환주식이 대상이었다. A씨는 팀장이 공석인 빈틈을 노려 비밀번호생성기(OTP)를 도용해 자신이 관리하던 23억5,000만 원 상당의 B사 주식을 인출했다. 인출한 주식을 동생의 증권계좌로 넣고, 5개월 뒤 해당 주식을 다시 매입하고 원래 계좌에 입고해 횡령 사실을 은폐하기도 했다.
첫 횡령이 발각되지 않자 추가 범행은 더욱 노골화했다. A씨는 2012년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우리은행이 관리 중이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 614억5,000만 원을 횡령했다. 직인을 도용하거나 공·사문서를 위조했다. 또 2014년 8월부터 2020년 6월까지는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천공장 매각 계약금 등 59억3,000만 원을 허위 출금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식으로 빼돌렸다.
금감원은 전체 횡령액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동생의 증권 계좌로 유입돼 주식이나 선물 옵션 투자에 사용됐고, 나머지는 친인척 사업 자금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했다.
금감원은 이번 횡령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사고를 미리 예방하거나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은행 내부통제체계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고 판단했다.
실제 우리은행의 관리체계는 ‘엉망’이었다. 은행의 대외 수신ㆍ발신공문에 대한 내부공람과 전산등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A씨는 공문을 은폐하거나 위조할 수 있었다. 또 A씨는 통장과 직인을 모두 본인이 관리, 정식결재 없이 직인을 도용해 예금을 횡령했다.
결재 관리도 허술하긴 마찬가지였다. A씨가 총 8회에 걸쳐 횡령하는 동안 이 중 4차례는 상부 결재를 받았으나, 모두 전자결재가 아닌 수기결재문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산등록도 되지 않아 결재내용의 진위여부 확인도 사후점검도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우리은행의 인사관리는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A씨는 금융위원회에 파견 간다고 허위로 구두 보고를 한 뒤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1년 넘게 무단결근을 했다. 하지만 은행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다가 횡령 사고 후 금감원 검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인지했다. 금감원은 “A씨의 주도면밀한 범죄행위가 주된 원인이나, 사고를 예방하거나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은행의 내부통제 기능이 미흡한 것도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총체적 관리 부실이 드러나면서 우리은행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임직원은 물론 기관에 대한 제재 수위도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관·임직원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준수 부원장은 "이번 사고 관련자는 직접적 라인에 있는 팀장·부서장도 있고, 최종적으로 행장·회장까지 갈 수 있지만 관련자 범위가 어느 정도 확대될 것인지는 법적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