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원 강영도(64)씨는 매일 오전 6시 30분부터 15시간씩 일한다. 내리쬐는 햇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단지 안을 청소하고, 주차 차량을 정리한다. 분리수거 정리까지 하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근처 대단지 아파트 경비실에는 에어컨이 아예 없어 경비원들이 35도 넘는 더위에 바깥에 나와 앉아있다. 강씨는 "다들 나이도 많은데 더위가 심해져 누구 하나 쓰러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우편물류센터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40대 집배원 A씨가 일하던 대전 중부권광역우편물류센터 1층 작업장 실내온도는 33도에 육박했다. A씨는 "너무 더워 밥이 안 넘어가고 소화도 안 돼 일하는 내내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며 "물을 2L씩 마셔도 화장실을 2번밖에 가지 않을 정도로 탈수가 심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장에 공조기가 설치됐지만, 실외기 없이 더운 공기만 순환돼 작업장은 찜통이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온도가 35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열사병 예방을 위한 기본수칙을 홍보하고 실태 특별 점검에 나섰지만, 온열질환 재해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만 6명의 열사병 의심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차적으로 더위 피해를 받지만, 실내 환경도 쾌적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물류센터 폭염 피해 사례가 쏟아졌다.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실제로 측정한 수치를 보면, 오후 11시 36.2도, 오후 6시 30분 37.3도가 기록됐다"며 "열사병 치명률이 30%에 달하는 만큼 '폭염특보' 같은 외부 기준이 아니라 내부 온도를 기준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쿠팡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달 동탄물류센터에서만 3명의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대부분의 물류센터가 '창고'로 지어진 곳을 임대해 쓰는 형태여서, 근본적인 폭염 대책이 어려운 한계도 있다. 권영국 쿠팡대책위원회 대표는 "판매 대상인 신선식품을 위해서는 냉방설비를 갖추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노동 현장에서는 폭염 때 노동 현장 규제에 대한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이달 들어 전국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폭염 피해 등을 점검하고 있는 인권연대 산업재해감시단의 고유기 정책실장은 "물과 그늘, 휴식을 강조하고 있는 고용부 권장사항은 현장에서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다"며 "폭염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기준을 넘어서면 의무적으로 작업 중단 조치를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도적 한계도 있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장은 "노동자가 고열에 노출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상 열거된 '고열작업' 또는 '옥외작업' 중이 아닌 한 사업주에겐 보건조치의 의무가 없다"며 "온열질환으로 산재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물류센터와 같은 실내 작업장은 온도계를 비치할 필요도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류 센터장은 "냉방장비를 얼마나 갖춰놨냐가 아니라, 그 조치로 인해 실내온도가 실제로 얼마나 떨어졌느냐가 관리감독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