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크는 빅테크 '경고등'에...SKT-하나금융, 4300억짜리 혈맹 맺다

입력
2022.07.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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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하나금융, SKT·SK스퀘어 지분 사들여
②SKT, 3,000억원어치 하나금융지주 지분 매입
IT와 금융 융합한 혁신 서비스 출시 계획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빅테크 영역 확대
메타버스에 지점 내고 '통신+금융' 맞춤 마케팅


SK텔레콤과 하나금융그룹이 4,300억 원대의 대규모 지분을 교환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카카오, 네이버, 토스 등 빅테크 기업들이 정보통신기술(ICT)과 빅데이터를 결합해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다.

24일 SK텔레콤은 기존 보유하고 있던 3,300억 원 규모의 하나카드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고, 3,300억 원 규모의 하나금융지주 지분을 매입한다. 하나카드는 684억 원 규모의 SK텔레콤 지분과 SK텔레콤이 보유한 316억 원 상당의 SK스퀘어 지분을 매입한다.

이번 협약에 대해 SK텔레콤 관계자는 "특정 회사끼리 협력을 넘어 SK ICT 패밀리와 하나금융그룹의 협력에서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양사는 ICT와 금융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영역에서 손을 잡기 위해 협력체를 꾸릴 것"이라고 밝혔다.



IT 기술력으로 사업 확대하는 빅테크...혁신에 뒤처진 전통산업


통신과 금융 업종의 대표 기업인 두 회사가 대규모 지분 교환을 단행한 이유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빅테크 기업이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카카오는 각각 포털과 메신저를 기반으로 콘텐츠, 커머스, 인터넷 은행 등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①카카오뱅크의 경우 출범 초기 챗봇 등 IT 기술을 접목해 오프라인 매장 없이도 가입자를 빠르게 모을 수 있었다. ②핀테크 앱 토스의 경우 간편 송금 서비스를 시작으로 증권, 간편결제, 보험 등 '슈퍼 앱'으로 진화했다. 21일에는 알뜰폰 사업자(MVNO) 머천드코리아를 인수하며 통신 시장으로도 발을 넓혔다.

빅테크 기업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가입자를 늘리면서 '21세기 원유'로 불리는 빅데이터를 엄청나게 확보하고 있다. 이에 자신의 업종만 지키고 있다가는 뿌리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위협에서 두 회사는 힘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6월 기준 금융 앱 이용자 순위에서 토스(1,427만 명)와 카카오뱅크(1,315만 명)는 시중 은행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KB스타뱅킹(1,150만 명), 신한은행의 신한 쏠(945만 명), NH농협은행의 NH스마트뱅킹(846만 명)이 뒤를 이었다. SK텔레콤 역시 메타버스, 전자상거래,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빅테크 기업의 속도전에 힘겨워 하고 있다.



메타버스서 고객 상담, 위치+소비 데이터 결합한 마케팅


두 회사는 ①금융의 디지털 전환 ②통신과 금융 데이터 결합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 ③양사 인프라 공동 활용 ④디지털 기반 공동 마케팅 ⑤양사 고객 특화 상품·서비스 융합 ⑥ESG 협력을 통한 사회적 역할 확대 등의 협력을 하기로 했다.

가령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 하나금융그룹의 가상 지점을 만들어 아바타를 통해 고객 상담을 진행하거나, 이프랜드 내 결제 시스템 구축에 하나금융그룹이 힘을 보탤 수 있게 됐다. 또 양사가 확보한 빅데이터를 결합해 이용자 맞춤형 마케팅도 더해질 방침이다. SK텔레콤이 보유한 통신 데이터는 이용자의 위치 정보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하나금융은 결제 데이터를 통해 이용자들의 소비 성향을 알 수 있다. 30대 남성의 이동 경로에 맞춰 스포츠 광고나 게임 광고를 선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금융은 SK텔레콤 고객에게 우대 금리 혜택을 제공하거나 SK텔레콤이 운영하고 있는 구독 서비스 '우주패스'와 연계한 금융 상품 출시도 검토하기로 했다. 하나금융 고객이 11번가, 콘텐츠 웨이브, 원스토어 등 SK스퀘어 자회사 서비스에 가입할 경우 금융 혜택을 받는 식의 사업이 가능하다.



2002년부터 혈맹 SKT-하나 "빅테크 위협 공동 대응"


사실 양사가 손을 맞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외국계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이 SK그룹 경영권을 공격했을 때 주채권은행이던 하나은행은 백기사 역할을 자처했다. SK텔레콤은 2009년 말 전략적투자자(SI)로 4,000억 원을 들여 하나은행에서 분사한 하나카드 지분 49%를 샀다. 2016년에는 SK텔레콤과 하나금융지주가 함께 출자한 합작기업 '핀크'를 설립하기도 했다. 2019년 5월에는 제3인터넷전문은행에 함께 도전했지만 예비인가 불허를 받기도 했다.

양사의 시너지가 기대에 못미치자 2019년 7월 SK텔레콤은 보유하고 있던 하나금융 지분 610만 주 전량을 매각했다. 이는 2015년 SK텔레콤이 하나카드 보유 지분 중 10.4%를 하나금융에 팔고, 그 자금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해 확보한 주식이다. SK텔레콤은 당시 지분 매각에 대해 "5세대(5G) 이동 통신망 투자를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일부에선 인터넷전문은행 탈락의 여파로 해석했다. 이후 양사는 각자의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의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두 기업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손을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SKT는 고객 가치를 높이고 ICT, 금융산업 생태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협력하고, 다양한 ESG 활동에도 힘을 모아 선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앞으로도 하나금융그룹은 디지털 혁신을 통한 손님 가치 실현, 금융과 ICT 융합을 통한 혁신 가치 추구, ESG 부문의 협력을 통한 사회적 가치 확산 등 협업의 범위를 넓혀가겠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