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이 미국의 '내홍'으로 번지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에 난색을 표했으나, 펠로시 의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여당 유력 정치인의 대만행을 말리는 이례적인 광경을 중국은 내심 즐기고 있다.
2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국방부는 당장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하는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의견을 빌려 우회적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0일 안에 대화할 것으로 본다"며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먼저 밝힌 만큼, 중국을 자극했다 일이 꼬일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펠로시 의장은 다음 달 일본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연달아 방문하는데, 대만도 방문국에 포함돼 있다고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1일 미국 의사당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대만을 갈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경호 문제 때문에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겠다"며 "대만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지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대만 방문 의사를 명시적으로 철회하지 않았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비행기가 중국에 격추되는 일을 걱정하는 것 같은데,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했다"고 했다.
공화당 소속의 마이크 갤러거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미국 외교의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고 비판하며 "펠로시 의장은 물러서지 말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보류를 요청한 만큼 펠로시 의장이 미중 정상회담 이전에 대만행을 공식화하기는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 군용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 출격 등 보복성 군사 대응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NN방송은 "중국이 대만 상공에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게 미 군당국의 우려"라고 보도했다. 비행금지구역이란 해당 상공에서 군사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무단 침입한 타국적기에 대한 격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고집을 피운다면 중국은 반드시 강력한 대응과 반격을 가할 것"이라며 경고한 상태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엇박자에 중국은 '압박이 먹혔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2일 "펜타곤(미 국방부)이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반대를 표명하며 중국의 경고를 받아들였다"며 "미국은 중국이 취할 외교·군사적 조치를 감당할 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외견상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대화에 더 절박한 모양새가 됐다"며 "미중 정상회담 직전까지 더욱 미국을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