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대법 판결 세 번째 취소… 최고법원 위상 두고 갈등 고조

입력
2022.07.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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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만에 또… GS칼텍스 등 재심 기각 판결 취소
헌재 "한정위헌도 위헌… 법원 포함 기속력 있어"
대법, 불편한 기색… 앞서 "심급제 무력화" 반박
두 기관 갈등에 국민만 피해… "입법적 해결해야"

최고 법원 위상을 둘러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헌재가 3주 만에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심 기각 재판을 재차 취소했기 때문이다. 헌재가 대법 판결을 취소한 건 세 번째다. 헌재의 잇따른 재판 취소 결정에 대법원은 "최고 법원은 대법원이란 입장에 변함은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헌재는 21일 GS칼텍스, 롯데디에프리테일, KSS해운이 옛 조세감면규제법(1993년 개정 전 법률) 부칙 23조와 관련해 제기한 재심 청구에 대한 법원 기각 판결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취소 결정했다. GS칼텍스 등은 헌재가 해당 조항에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뒤 재심을 청구했으나 2013년 법원에서 기각됐다. 한정 위헌은 '단순 위헌'과 달리 법 조항은 그대로 둔 채 '법원이 이렇게 해석하거나 적용하면 위헌'이라고 보는 '변형 결정'이다.

헌재는 이날 "헌법에서 부여받은 위헌심사권을 행사한 결과인 위헌 결정은 법원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하고, 한정위헌도 일부 위헌결정"이라고 밝혔다. 헌재의 한정위헌을 토대로 청구된 재심에 대한 법원의 기각 판단은 헌재 결정에 반하는 것이기에, 헌재 권한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란 것이다.

대법원은 헌재 결정에 대해 "종전 입장에서 변함없다"고 밝혔다. 즉각적 반발로 두 기관이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를 피하겠다는 의도일 뿐, 헌재 결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대법원의 그간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대법원은 지난달 내려진 헌재의 재판 취소 결정에는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심급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한 바 있다. 더불어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라며 "다른 국가기관이 법률 해석기준을 제시해 법원으로 하여금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도록 하는 등 간섭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선 헌재와 대법원의 힘겨루기로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한다. 이날 재판 취소 결정을 받아낸 GS칼텍스의 경우, 통상적이라면 헌재 결정을 근거로 법원에 다시 재심을 청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법원은 다시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 헌재와 대법원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쳇바퀴 돌듯 '법원 재심 기각→헌재 재판 취소'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두 기관이 양보하면서 원만하게 해결하라고 주문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며 "헌재의 위헌 심판 대상에 법원 판결을 명시할지 여부에 대해선 입법적 해결이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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