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책들은 다 어디로?...시진핑 어록만 가득한 '홍콩 북페어'

입력
2022.07.21 15:00
홍콩 민주화 시위 서적 사라지고
시진핑 어록 대거 등장
"백 송이 꽃 피웠던 전시장, 타협으로 가득" 한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도서전 중 하나인 '홍콩 북페어(book fair)'가 '시진핑 북페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홍콩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온 중국이 출판계 등 홍콩 문화계까지 그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면서다.

지난 20일 개막해 일주일간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홍콩 북페어는 올해로 32회째를 맞았다. 세계 각국의 신간은 물론 중국 본토에서는 찾기 어려운 각종 정치 서적을 접할 수 있는 국제 도서 박람회로, 코로나19 발생 전까지만 해도 100만 여명이 입장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도서전으로 꼽힌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비판론을 담았거나 각종 사회 운동을 다룬 서적들은 올해 전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20일(현지시간) "이미 지난해부터 홍콩 정치에 대한 책을 찾기 어려웠지만, 1년이 흐른 지금은 각 출판사들이 책을 내는 데 더욱 신중해졌다"며 "톈안먼 사태나 홍콩 민주화 시위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룬 책들이 전시장에서 사라졌다"고 전했다. 대신 그 빈자리에는 '중국 공산당 역사', '시진핑 어록' 등 시 주석의 사상을 설명한 책들이 대거 전시됐다고 VOA는 전했다.

2년 전 홍콩 국가보안법 도입에 이어 중국 정권을 등에 업은 리자차오 신임 행정장관의 취임(1일) 이후 홍콩 당국의 이른바 '불온 서적' 단속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이달 초 5년 만에 홍콩을 방문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폭동"이라고 규정하며 '홍콩 독립'을 다룬 서적은 북페어는 물론 동네 서점에서도 발 딛지 못하게 됐다.

전시장을 찾은 홍콩의 한 언론인은 "백 송이의 꽃이 피었던 홍콩 북페어가 '정치적 타협'으로 가득 차버렸다"며 "결국 이 행사는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세뇌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고 한탄했다.

홍콩 당국은 이번 북페어에 출시될 서적에 대한 공식적인 사전 검열은 벌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해부터 출판사 관계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등 정치적 압력을 통해 서적 출판·전시를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북페어에는 지난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출판사 가운데 최소 3개의 출판사가 전시를 포기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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