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실이 과거 대선 캠프에 참여한 친족과 지인 자녀 등을 임의로 채용하는 등의 행동으로 비판을 받자, 대통령실이 "법적인 문제가 없다"며 적극 해명에 나섰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우리나라 대통령도 그렇고 외국도 그렇고 대통령실 구성원칙인 엽관제에 의해 캠프 등에 참여했고 능력이 인정된 분들을 채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엽관제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공을 세운 선거 운동원 및 해당 정당의 적극적인 지지자에게 기여도와 충성도에 따라 관직에 임명하거나 다른 혜택을 주는 인사제도다.
실제 미국 백악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장녀 이방카 트럼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부부가 백악관 내 보좌관 지위를 맡아 인사와 정책에 관여한 바 있다. 이방카 부부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부터 '트럼프 왕실'의 실세로 불렸던 이들이기는 하지만, 미 대통령의 직속 조직인 백악관 인사에 어느 정도 자율성을 부여하는 경향을 증명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방카와 쿠슈너가 백악관 직위를 맡을 당시부터 미국 내에선 '친족 채용 금지법' 위반 여부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미국 법무부에선 대통령이 백악관 채용에 있어서는 상당한 자율성이 인정된다는 법률을 근거로, 백악관 보좌진에는 친족 채용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미국의 공직 친족 채용 금지법은 흔히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동생인 로버트(바비)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지명한 것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는 시각이 많다. 이 때문에 '바비 케네디법'이란 별칭도 있다.
하지만 당시 법안 발의에 참여했던 닐 스미스 전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를 부인하면서 "지방정부의 소규모 조직이나 의회에서 부인과 자녀들을 일도 안 시키고 월급명부에 올리는 것에 대한 견제가 목적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친족채용금지법의 원인이라는 로버트 케네디가 법무장관으로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케네디는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막는 데 기여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중적 인기도 높아 형 케네디의 암살 직후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으며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방카 부부의 백악관 입성에 반발이 크지 않았던 이유는 백악관 조직 및 인사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당시 두 부부를 위해 개설된 경제 이니셔티브 및 기업가정신국 국장(이방카)과 미국혁신국 국장(쿠슈너) 자리는 사실상 트럼프 백악관에서 신설된 직위였다. 모두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집권한 후 폐지됐다.
실질적으로도 두 사람은 트럼프 정부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전방위로 활동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일등공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인 에릭 트럼프나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도 백악관 입성이 거론됐으나, 캠프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백악관 내에서조차 트럼프 친족에 대한 견제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입성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실 부정 채용 논란과 동시에 불거진 '겸업 금지' 논란의 경우는 트럼프 백악관에서도 엄격히 통제된 부분이다. 트럼프 본인은 물론이고 쿠슈너 부부는 백악관 입성 전 대표와 이사 등 모든 경영직을 내려놓은 바 있다. 이방카와 쿠슈너는 백악관에서 형식상 무보수로 일하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워싱턴 트럼프 호텔이 해외 외교관의 인기 숙박 장소로 부각되면서 트럼프 코퍼레이션을 통해 재산상의 이익을 얻은 측면은 비판 대상에 올랐다.
법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이들의 정치 활동 참여 결과는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방카와 쿠슈너는 트럼프 집권 초기 중국과의 대화 노선을 주도했으나 미·중대립이 심화하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방카는 친선대사에 가까운 역할로 2019년 남북미 정상회담 등에 참석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2021년 1월 6일 의사당에 난입한 자신의 지지자들을 자제시키는 메시지를 발표하도록 설득하며 의회와 부친 사이를 중재하기도 했다.
쿠슈너는 트럼프 집권 후기엔 중동 외교를 맡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바레인 등 아랍 국가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이끌어내는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당시 코로나19 위협이 과장됐고 트럼프 정부의 초기 대응이 적절했다는 주장을 폈다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쿠슈너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는 면박을 들었다.
쿠슈너 부부에 앞서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1993년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보건의료정책 개혁 태스크포스(TF)를 맡아 활동한 적이 있다. 당시 영부인의 공직 담당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소송도 벌어졌지만 연방항소법원은 "영부인의 공공 서비스에 대한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에 영부인인 시점에서 사실상의 공직자"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이방카 부부보다 더 격렬한 정치적 역풍에 시달렸다. 건강보험 개혁안은 '힐러리케어'라는 이름으로 공화당은 물론 일부 민주당원들의 조롱을 받았고, 지속된 반발 시위 탓에 방탄 조끼까지 착용하고 다녀야 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1994년 중간 선거에서 패배했고, 힐러리 클린턴 자신도 나중에 회고록에서 자신의 활동이 패배로 이어졌다고 인정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정치인으로 재기하게 된 것은 남편의 퇴임 후 본인이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