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 양성한다더니, 고급 인력 육성 예산 36% 줄었다

입력
2022.07.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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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대적인 반도체 인재 양성방안을 준비 중이지만, 정작 기존 반도체 고급 인력 양성 사업 예산은 36%나 깎인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정의당 정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종합계획 'K반도체 전략'에는 민관공동투자 방식으로 2023년부터 10년간 총 3,500억 원을 투입하는 석박사급 반도체 고급인력양성사업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15일 정부가 주최한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 토론회에서 공개된 교육부 자료에는 이 예산이 2,228억 원으로 36.3%나 축소됐다.

예산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5월 31일 이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시키면서 삭감했다. 과기부 관계자는 "연구개발(R&D) 예타는 사회간접자본(SOC) 예타와 달리 모든 사업에서 예산 삭감이 이뤄진다"며 "이번 사업은 사업 목적과 어긋난 부분과 단가 등에서 조정이 있었으나, 오히려 평균 통과 비율인 60%보다 많은 예산이 편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예산이 축소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재 양성을 지시했고, 이 자리에서 반도체 전문가인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20분간 반도체 특강을 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예타로 반도체 고급 인력 양성 사업 예산을 36% 깎은 지 일주일 만에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특강에 나선 셈이다. 과기부 측은 "예타 심사는 절대평가로 이뤄지며, 정책 기조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K반도체 전략은 2023년부터 2032년까지 대학 정원 확대로 1,500명, 학사 인력 1만4,400명, 전문 인력 7,000명, 실무 인력 1만3,400명 등 3만6,000명의 반도체 인력을 배출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장관은 국무회의 특강에서 K반도체 전략의 인력 육성 계획은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전 정부 정책을 의도적으로 지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반도체를 배우기 위해 만났던 인물로 현 정부의 고급 인력 중심 정책 방향성을 모를 리 없지만, 정작 관련 사업 예산은 축소시켰다"며 "행정 낭비를 감수하면서까지 전 정부의 정책을 무시한 채 새 정부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는 업적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오해받기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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