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고통' 서민들, 가계 부담 던 지역화폐 축소에 "하필 지금?"

입력
2022.07.17 10:00
지역화폐 혜택 중단·축소 지자체 속출
서민·소상공인 "힘들 때 더 힘들게 해" 한숨
"부자·대기업 감세하면서 서민 지원 인색"
"선거 때 '서민·소상공인' 외치더니 뒤통수쳐"
정부 올해 지원 예산 축소해 예견된 일
국민의힘 집권으로 내년 전액 삭감 가능성도
"욕 먹어도 현금 지원 없애야" 의견도

인천시가 지역화폐인 '인천e음' 카드의 혜택(10% 캐시백)을 5%로 축소한 지난달 27일.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시민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회원들은 "물가도 올라서 힘든데 이거라도 유지해주지" "가뜩이나 고물가 시대인데 더 힘들게 하네" "경기침체에 서민들 힘들어 죽겠는데 혜택 늘리기는커녕 절반이나 줄인다고?" "이해가 안 되네. 서민들 어려우니 재고 바람" 등 못마땅해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4일 지역화폐(서울사랑광역상품권)를 판매한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스마트폰용 '서울페이앱'에서 판매된 이 상품권은 7% 할인(10만 원어치 구매 시 9만3,000원만 결제) 혜택을 줬다. 준비된 250억 원어치가 70분 만에 완판됐으나 구매자들에게서 아쉬운 소리가 나왔다. 상반기에 시내 25개 구청이 판매한, 각 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할인율 10%, 구매한도 70만 원)보다 할인율과 구매한도(40만 원)가 모두 낮아서다. 서울시 홈페이지 내 상품권 판매 알림글에 달린 "(할인율과 한도) 예전대로 해주세요"(juhee), "7%로 낮춘 이유를 밝혀라"(에*) 등의 댓글 속에, 서울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번 광역상품권의 장점은 묻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워진 서민의 가계부담을 덜어준 지역화폐 혜택이 잇따라 축소되면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 예산 축소로 예견된 일이기도 하지만, 이용자들 사이에선 "갈수록 물가가 치솟아 살림이 어려워지는 마당에 굳이 서둘러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의견이 다수다. "지역화폐 혜택을 없애면 사용액 급감이 불가피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는다"는 우려와 "대기업·부자 감세에 적극적이면서 서민 정책에는 인색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코로나 때 확대한 정부 지원 축소... 국민의힘 집권 영향도"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서울과 인천 외에도 상당수의 지자체가 지역화폐 혜택을 없애거나 축소하는 추세다. 경북 경주시는 이번 달부터 '경주페이' 10% 캐시백 혜택을 잠정 중단했고, 충북 청주시도 지난달 24일부터 '청주페이' 10% 환급을 중단했다. 상반기 관련 예산을 모두 소진해서다. 경기 용인·화성·김포시도 이달부터 할인율을 10%에서 6%로 낮췄다. 대전시는 다음 달부터 지역화폐 '온통대전' 월 충전 한도(50만 원→30만 원)와 캐시백 비율(10%→5%)을 하향조정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름철 국내 최고 휴가지로 자리 잡은 제주도 역시 예산 소진을 이유로 지역화폐 '탐나는전' 10% 환급을 5월 중단, 제주도 휴가 계획을 세운 많은 피서객들을 울상짓게 했다.

지역화폐 혜택 축소는 정부 지원 예산이 대폭 줄어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지역화폐는 원래 각 지역의 자체 사업이었으나 2020년 코로나19 확산과 경제 위기에 대응하고자 정부 지원을 한시적으로 증액(지역화폐 발행액의 약 4%)했다. 덕분에 2019년 3조2,000억 원이었던 지역사랑상품권 판매액은 지난해 23조6,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하반기 물가 7% 예상, 코로나도 재확산... 상황 바뀌어"

그러나 올해 지원 예산은 코로나19 완화와 지원 예산 정상화에 따라 대폭 감소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올해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예산은 추경 1,000억 원까지 포함해 약 8,000억 원이 편성됐다"며 "1조2,000억여 원이었던 지난해에 비해 3분의 1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지원 예산 감소분을 각 지자체가 충당해야 해, 조기 마감하거나 혜택을 줄인 것이다.

또,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인 지역화폐를 '선심성 현금 지원'이라고 비판해 온 국민의힘이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을 모두 장악한 영향도 있다. 예산권을 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야당 의원 시절인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지역화폐를 "국책연구기관(한국조세재정연구원)마저 경제 효과가 없다고 진단한 현금살포성 재정 중독사업"이라고 강력 비판한 바 있다. 조세연은 2020년 발간한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가 각종 비용 지출을 수반하며 경제적 효과도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최근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스멀스멀 오르던 물가상승률이 지난달 6%까지 치솟았고, 하반기에는 7, 8%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도 4만 명을 돌파하며 재확산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기에, 그동안 서민 가계의 숨통을 트이게 해줬던 지원책을 서둘러 거두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는데 좀 나중에 폐지하면 안 되나?"(kwse***)는 호소가 충분히 나올 법하다.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보도에 "어느 나라 정부냐?"

그러나 지난 14일엔 기획재정부가 내년 지역화폐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최대 전액 삭감도 검토 방안에 포함됐다"는 얘기도 들리자 누리꾼들은 "오히려 늘려야 할 판에 전액 삭감?"(jjmw****), "선거 때는 소상공인 입에 달고 살더니 뒤통수 한 번 찰지게 치네"(kwon****), "현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냐? 지역 살리는 지역화폐 전액 삭감해서 어디다 쓸 겨?"(f2ve****), "부자 감세해주고, 소상공인은 지역화폐 없애서 굶어 죽으라고 하는 구나. 참 대단하다"(emdr****), "욕이 아까운 행정부네. 그나마 지역화폐 제도라도 있어서 동네 마켓이나 소상공인들이 같이 먹고사는데"(quee****)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물론 "보편적으로 퍼주는 것 그만하자"(char****) "혜택이 천년만년 갈 줄 알았나? 욕 먹어도 끊어낼 건 끊어내야지"라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원 예산을 없애는 최악의 경우라도 "비올 때 우산을 뺏지는 말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일부 누리꾼은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놔두고 급작스럽게 집무실을 이전하면서 적지 않은 예산을 사용한 점, 법인세 인하로 대표되는 부자·대기업 감세 등의 정책을 겨냥하며 "대통령 용산으로 옮기고 나랏돈 펑펑 쓰는 중인데 서민을 위한 이것도 못 봐주나?"(rkrk****), "역시 부자 감세하고 서민혜택 줄이는 구나"(piri****)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역화폐 예산을 대폭 삭감한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더라도 여야 간 논의 과정에서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지역화폐 정책을 적극 실시해 온 민주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민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