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도 축구 팬들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수도권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궂은 날씨에도 일찌감치 구름같은 인파가 몰렸다. 이날 오후 8시 열리는 토트넘과 '팀 K리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팀 K리그와의 경기는 2022~23시즌을 앞두고 한국에서 프리시즌을 보내고 있는 토트넘의 첫 친선 경기다. 국가대표 '캡틴'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과 K리그를 대표하는 팀 K리그의 흔치 않은 만남이다보니 이날 경기는 팬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6만6,000석 규모의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지난달 17일 티켓 예매가 시작된 지 약 25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된 가운데, 점심시간을 갓 넘긴 오후 1시부터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응원 도구를 품에 안은 채 경기장 일대를 누비는 팬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경기장까지 이동하는 5분(도보 기준 377m) 동안 마주친 행인 40명 중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팬만 25명에 달했다.
비를 피해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편의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던 팬들은 입장시간이 다가오자 하나 둘 출입구로 모여들었다. 북측 출입구 앞에는 입장 시간보다 한 시간 이른 오후 4시30분부터 우의를 입은 관중들이 길게 늘어섰다.
선수단 버스가 들어오는 경기장 서쪽 차량 출입구에는 토트넘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동갑내기 친구 이승현(22)씨와 이선호(22)씨는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피켓을 든 채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5년 차 토트넘 팬인 이승현 씨가 이선호 씨를 '영입'해서 함께 오게 됐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냐는 물음에 “손흥민을 제외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 데얀 클루셉스키(이승현 씨)와 해리 케인(이선호 씨)을 꼽았다. 이선호 씨의 피켓에는 “Can I Have Your Shirts, Please!”라고 적혀 있었다. “그냥 해봤다”고 멋쩍게 얘기했지만 기대감이 잔뜩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모두 토트넘을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새하얀 토트넘 유니폼 무리 속 ‘빨검(빨강 검정)’과 ‘파검(파랑 검정)’ 유니폼도 눈에 띄었다. 팀 K리그를 응원하는 팬들이다. 각각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 팬이라는 유지훈(28)씨와 임하진(29)씨는 직장에 반차를 내고 이날 경기를 보러 왔다.
둘은 “손흥민보다 우리 팀 선수가 당연히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 씨는 조영욱(FC서울)을, 임 씨는 김동민(인천)을 응원한다. 전날 팀 K리그 공개훈련장을 방문해 두 선수로부터 유니폼에 사인도 받았다. 임 씨는 “K리그를 대표해 우리 (인천) 선수들이 이런 경기에 나간다는 게 자랑스럽다”며 “기 죽지 않고 잘 했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