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일본 정치권에 대형 공백이 생겼다.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내며 약 9년간 일본을 이끈 거물이자 일본 우경화를 주도한 보수우익의 상징적 존재다. 그런 그의 부재는 일본 정계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 정세에도 상당한 영항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로선 충격에 휩싸인 일본 정치권에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강한 총리였던 아베 전 총리는 퇴임 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파벌의 힘과 지지 여론을 등에 업고 국가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후임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외교·안보·재정 등 각종 정책에 강하게 간섭, 기시다 내각엔 '아베의 그림자'가 줄곧 드리워져 있었다. 다시 총리로 등판하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될 정도였다.
'어둠의 쇼군'이라 불렸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1972~1974년 재임)처럼 아베 전 총리가 일본 국정의 막후 실세 역할을 오래도록 할 것이란 전망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달 10일 실시되는 참의원(상원) 선거는 자민당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었다. 아베 전 총리의 비극적 사망으로 자민당이 더 크게 승리할 것이라고 일본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그러나 자민당의 승리가 '기시다의 승리'가 아니라 '아베의 승리'로 인식된다면, 집권 세력의 내부 사정이 복잡해진다.
우선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보수 세력의 상실감과 동정론을 앞세운 자민당 강경파가 목소리를 키우는 시나리오가 있다.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헌법 개정, 방위비(국방비) 인상, 한국·북한·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더 강경한 외교 등 '추가 우클릭'을 주장하면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정국의 향배는 기시다 총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정치인 등 유명인의 사망을 오래 추모하고 애도하는 것이 일본 사회의 특징이다. 이에 기시다 총리가 곧바로 본인의 노선을 결정하기보다는 여론을 살피며 '정중동'의 행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 "아베 전 총리 유지를 받들겠다"는 명분으로 개헌을 추진함으로써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국정 장악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한일관계나 중일관계는 크게 손대지 않은 채 당분간 강경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집권세력 핵심부에선 권력 투쟁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자민당 내 아베파는 당분간 차기 수장을 놓고 권력 투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 전체 권력 구조에선 기시다 총리가 일단 유리한 자리를 선점했다. 10일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엔 3년간 대형 선거가 없다. 여당이 이긴다면, 기시다 총리와 내각은 당 안팎의 견제에서 자유로운 '황금의 3년'을 맞이한다.
이헌모 주오가쿠인대 교수(정치학)는 "아베 전 총리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권력 투쟁에서 가장 유리한 것은 '현직 프리미엄'을 가진 기시다가 될 것"이라며 "다만 자신의 색깔을 당장 크게 드러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의 측근이자 내각 경험이 많은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장관도 정치권의 조명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전 총리가 적극 지지한 다카이치 사나에 정무조사회장은 막강한 '배후'가 사라짐에 따라 입지가 더 좁아지게 됐다. 그는 아베 파벌의 반대로 파벌에 가입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