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 준비 끝"...최초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의 도약

입력
2022.07.09 04:30
11면
'단군 이래 최대 규모 방위력 증강 사업' 개막 초읽기
"사실상 지금 비행 시작해도 돼" 성공 장담 목소리
2026년 양산 예정... 이르면 7월 말 초도 비행 계획


귀가 멍멍해지기 전, 가슴이 먼저 울렸다.


6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주기장. 강렬한 햇볕으로 달궈진 활주로 너머 한국형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기장 끝에서 ‘윙’ 하는 굉음을 내뿜으며 격납고 앞으로 달려온 KF-21의 수직 꼬리날개에는 1호기를 뜻하는 숫자 ‘001’과 보라매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졌고, 공군과 KAI 마크, 태극기는 물론 KF-21 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인도네시아 국기까지 동체에 그려져 있었다. KF-21은 언제든 하늘을 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제자리를 빙빙 돌거나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지상 활주를 계속했다.



보라매의 ‘화려한 비상’ 초읽기

단군 이래 '최대 규모' 방위력 증강 사업으로 꼽히는 KF-X 한국형전투기 개발 사업이 개막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해 4월에는 외관만 공개했지만 이번에는 자체 동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처음 선보였다. 이제 창공을 누비는 실제 비행만 남았다.

안준현 공군 소령이 이날 ‘램프 택시(지상활주)’에 나선 시제 1호기는 조종석이 한 개인 단좌 형태다. 현재 6호기까지 만들었다. 이 중 4대는 단좌, 2대는 후방 조종석이 있는 복좌 형태로 구성했다. 복좌 KF-21은 비행교육과 무장운용 등의 용도에 사용할 것이라고 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아직 하늘을 날지는 않았지만, 활주 시험만으로도 KAI 연구원들은 감격에 벅찬 표정이었다. 김남신 KAI 사후관리팀장은 “항공기의 작동성 및 건전성을 확인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서 “KAI가 개발한 항공기 각 구성품에 대한 검증 이후 항공기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속, 중속, 고속 활주 시험을 통해 항공기 구성품의 비행안전성 검증이 끝나고 나면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최초 비행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 팀장은 “엔지니어들,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고 있다”면서 그간 지난했던 개발 역사를 되짚었다. 다른 관계자는 “사실상 지금 비행을 시작해도 되는 단계”라며 KF-21의 성공을 장담했다. 김형준 KAI 부사장은 “대한민국 최고·최대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엔지니어들이 최근 3교대 근무까지 하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고 밝혔다.


DJ “국산 전투기 개발” 꿈 현실로… 2026년 양산 돌입 청사진

"2015년까지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

2001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 선언으로 KF-21 사업이 사실상 시작됐다. 방위사업청은 사업 타당성 분석, 탐색개발, 작전요구성능(ROC) 및 소요량 확정 등을 거쳐 2015년 12월 KAI와 본계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1월 체계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2026년까지 기본 비행성능과 공대공 전투능력을 구비하는 체계개발, 2026~2028년 공대지 전투능력을 갖추는 추가 무장 등의 단계적 개발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체계개발은 현재 62%가 진행된 상황이다.

지난 4월 말 처음으로 엔진 시동을 걸었다. 첫 비행 이후 2026년까지 2,000여 소티(비행횟수) 시험비행을 통해 항공기 안전성을 확인하고 고도와 속도, 기동을 순차적으로 확장하면서 최종적으로 비행 성능과 조종 특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내년 후반기 ‘잠정 전투용 적합’, 2026년 ‘최종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하고 2028년까지 추가 무장시험을 지속할 계획이다.

노지만 방위사업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 체계총괄팀장(공군 대령)은 “2024년 1분기에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최초 양산 승인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KAI는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으면 양산을 개시할 여건이 마련되므로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내년 전반기까지 사업타당성조사를 받은 뒤 계약을 진행해 2026년쯤 최초 양산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덧붙였다. 이후 생산이 본격화하면 공군은 2032년까지 총 120대의 KF-21을 도입할 방침이다. F-4, F-5 등 노후 전투기를 대체하는 동시에 KF-21이 공군력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나리오다.


1만6,000시간 스트레스 테스트...일부러 꼬리날개에 균열 내기도

최초의 국산 전투기.

그 화려한 찬사 뒤에는 드러나지 않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현장에서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는 엔지니어들이다. 이날 찾은 KAI 구조시험동에서 이들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KF-21과 동일한 전투기를 대상으로 전체 구조와 각 부품별로 성능을 시험하는 곳이다. 하중 보정시험, 정적시험, 내구성 시험 등을 통해 설계기준을 초과한 무게와 압력이 가해졌을 때 전투기 기체가 변형되는지 등을 체크하는 과정이다. KF-21의 운용수명은 8,000시간으로 설계됐지만 그 두 배인 1만6,000시간에 해당하는 하중을 반복적으로 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가 끝없이 진행됐다.

연료시험동을 찾았다. 최대 6톤에 달하는 연료를 실제로 채워보고 전투기 동체를 기울여가며 연료가 기체 각 부위의 연료 탱크 공간에 제대로 분배되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었다. KF-21는 비행시간을 사실상 무한정으로 늘리기 위한 공중급유 기능도 갖췄다. KAI 관계자는 "꼬리날개에 일부러 낸 균열이 얼마나 커지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전투기가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별 문제점을 사전에 예상해 만반의 성능을 갖출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담금질을 하는 셈이다.

전투기의 공격본능을 좌우하는 각종 무장도 속속 장착하고 있다. KAI 관계자는 “램프 택싱을 수행한 시제 1호기에 이미 영국제 미티어 공대공 미사일이 장착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독일제 공대공 미사일 AIM-2000과 미국·한국이 개발한 공대지 폭탄 및 미사일 장착도 가능하다고 KAI는 설명했다. 그렇게 KF-21은 한반도와 주변 상공을 철통같이 방어하는 최고의 공격 무기로 발돋움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보라매 창공으로…세계 8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 도약

보라매는 이제 날개를 펼친다. 방위사업청과 KAI는 이르면 이달 마지막 주에 KF-21 초도 비행에 나설 계획이다. 첫 비행은 기본적 성능만을 테스트하며 약 40분간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KF-21이 초도 비행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 8번째로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하는 국가에 이름을 올린다. 본계약 체결 기준으로 6년 7개월, KF-X 사업 선언 이후 21년 4개월 만의 쾌거다. 김 부사장은 “정말로 성공적인 초도 비행이 될 수 있도록 죽도록 뛰겠다”며 남은 여정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대한민국 공군의 상징인 ‘보라매’가 날갯깃을 다듬고 발톱을 곧추세웠다. 이제 창공으로 비상하는 것만 남았다.


사천= 김진욱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