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디지털 시대의 금'으로도 불리며 각광받던 가상화폐의 위상이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특히 가상화폐 가치 추락은 개인투자자(개미), 유색 인종, 젊은 층에 그 손해가 집중될 것으로 보여, 가상화폐의 부진이 부의 양극화를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최근 상황을 종합해 보면 주요국 금리 인상이 가상화폐의 가치를 끌어 내리고, 루나·테라의 폭락 사태로 시장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한 때 유력한 노후자산으로까지 인정받던 가상화폐는 '가장 위험한 자산' 취급을 받고 있다. 6일(현지시간) 기준 전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9,019억 달러다. 거래가 가장 활발했던 지난해 11월 2조9,000억 달러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나스닥 지수가 같은 기간 29% 하락(지난해 11월 말과 지난달 말 비교)한 것에 비하면, 가상화폐는 파멸적인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시장 자체가 패닉에 빠지면서, 놀란 투자자들이 줄지어 투자금 인출에 나섰고 거래 수수료로 먹고 살던 가상화폐 관련 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캐나다 토론토에 기반을 둔 가상화폐 중개업체 보이저디지털이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이에 앞서 싱가포르 기반의 암호화폐 대출업체 볼드도 가상화폐 인출과 거래를 중단하고, 채무지불 유예(모라토리엄)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거래소 등 관련 업체의 파산이 지속되면, 여기에 투자한 이들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가상화폐 보유를 선호했던 투자자들의 특성을 감안할 때 그 손실의 규모는 △기관보다는 개미 쪽에서 △노년보다는 젊은 세대일수록 △백인보다는 유색인종이 더 클 것으로 분석한다.
시장조사 업체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해 9월 실시한 조사를 보면, 미국 18~29세 청년층의 31%가 가상화폐에 투자했거나 거래·사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30~49세는 21%, 50~64세는 8%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가상화폐 경험치는 낮아졌다. 한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상화폐 보유자는 558만 명이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2030세대(308만 명)였다.
인종적으로도 비(非)백인들이 훨씬 가상화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서 백인은 13%만 가상화폐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나, 아시아인은 23%가 그렇다고 답했다. 히스패닉 21%, 흑인 18%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계 평균 소득이 낮은 흑인들이 기존 투자(부동산과 주식)에서는 불가능했던 부의 축적 가능성을 가상화폐에서 찾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상화폐의 추락으로 개미가 기관투자자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점도 씁쓸한 대목이다. 시장 호황기엔 단기간 수익이 가능하고, 수익률도 높으며, 규제가 없는 가상화폐의 특성은 개인 투자자들을 '빚투'(빚 내서 투자)로 이끌었다. 그러나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우선해야 하는 기관투자자 입장에선 가상화폐에 들어가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는데, 이것이 개미와 기관의 운명을 갈랐다. 뉴욕타임스(NYT)는 "2022년 가상화폐 대학살 속에서 월스트리트는 살아 남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