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한 존슨과 일 안 해"... 영국 내각 10여명 줄사퇴

입력
2022.07.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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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장관·보건장관 등 고위직 10여명 사임
여당서도 총리 불신임론 급증… 야당은 '맹공'
존슨, 정국 돌파 의지에도 "총리 앞날 불안"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어기고 음주 파티를 벌였다 불명예 퇴진할 뻔했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이번에는 ‘부적절 인사’와 ‘거짓 해명’으로 위기를 맞았다. 존슨 내각을 이끈 핵심 장관 2명을 포함해 정부 고위직 10여 명이 존슨 총리를 비판하며 줄줄이 사표를 던졌다.

존슨 총리는 곧바로 후임 인사를 단행하며 정국 수습에 나섰지만, 여당인 보수당에서도 총리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내각도 존슨 총리와 ‘손절’… “신뢰 잃었다”

영국 BBC방송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5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크리스토퍼 핀처 보수당 하원의원이 과거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사실을 알고도 올해 2월 그를 보수당 원내부총무로 임명한 것은 “나쁜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핀처 의원은 지난달 29일 한 행사에서 술에 취해 남성 두 명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하루 만에 사임했다. 이후 핀처 의원이 2019년 외무부 부장관 시절에도 성폭력을 저질렀고, 존슨 총리가 이를 묵인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총리실은 “존슨 총리는 몰랐다”(1일)고 부인하다가 “의혹을 인지했지만 이미 해결된 사안이었다”(4일), “보고를 받았지만 기억하지 못했다”(5일) 식으로 말을 거듭 바꿨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존슨 총리는 사과하는 자리에서도 “거짓말은 아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최측근들이 등을 돌렸다. 5일 오후 6시 존슨 총리가 사과 발표를 한 지 2분 만에 리시 수낙 재무장관이 트위터에 사퇴서를 올렸고, 10분 뒤엔 사지드 자비드 보건장관이 사의를 표했다. 수낙 장관은 “정부는 제대로, 유능하게, 진지하게 일을 해야 한다”고 했고, 자비드 장관은 “존슨 총리 아래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장관직을 수행할 순 없다”고 꼬집었다.

‘내각 쌍두마차’의 공개 비판으로 존슨 총리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알렉스 초크 법무차관을 비롯해 장관 보좌 의원 4명, 무역 대사 2명 등 내각 직책을 맡은 의원 10명이 하룻밤 새 줄줄이 물러났다. 빔 아폴라미 보수당 부의장은 TV 생방송 도중 사임 의사를 밝혔다. 6일에는 빅토리아 앳킨스 법무 부장관, 윌 퀸스 아동가족 담당 부장관, 로빈 워커 학교 담당 부장관, 스튜어트 앤드루 주택 담당 부장관, 조 처칠 농업혁신 및 기후적응 담당 차관 등도 사임 행렬에 합류했다.


여당도 총리 불신임 요구… 존슨, 정국 돌파할까

보수당에서도 존슨 총리 불신임론이 거세지면서 존슨 내각은 붕괴될 위험에 처했다. 존슨 총리는 지난달 초 이른바 ‘파티 게이트’와 관련한 당내 신임투표에서 과반 지지를 얻어 어렵사리 자리를 보전했다. 당규상 신임투표가 한 번 실시되면 12개월간 재투표가 불가능하지만, 이번에 규정을 변경해서라도 다시 신임 여부를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여름 휴정기에 들어가는 이달 21일 이전에 투표를 하자는 구체적 계획까지 거론된다. 앤드루 브리진 의원은 “존슨 총리가 사임하지 않으면 당이 그를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맹공을 퍼부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보수당은 부패했고 한 사람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민심도 싸늘하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9%는 존슨 총리가 즉시 사임해야 한다고 답했다.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지지한 유권자 사이에서도 존슨 총리 사임 요구가 처음으로 절반(54%)을 넘었다.

존슨 총리는 곧바로 후임 인사를 단행하며 퇴진 요구를 물리쳤다. BBC는 “존슨 총리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이제는 정부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미래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평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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