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죽었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는 은퇴했다. 마블 영화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터널스’(2021) 등을 통해 새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있다. 옛 캐릭터들이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도 앞줄을 지키는 슈퍼히어로들이 있다. 토르(크리스 햄스워스)가 대표적이다. ‘토르: 천둥의 신’(2011)으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에 합류한 후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6일 개봉한 ‘토르: 러브 앤 썬더’(토르4)는 토르를 단독 주연으로 내세운 4번째 영화다. 마블 캐릭터 중 최다다. ‘토르4’는 토르가 시간을 견디며 사랑받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한다.
영화의 시작은 어둡다. 사막에 딸과 함께 있는 남자 고르(크리스천 베일)가 스크린을 차지한다. 그는 어느 신을 맹종했다가 배신을 당한다. 고르는 알 수 없는 마력을 얻게 되고 우주의 신들을 모두 도륙하려 한다. 토르도 예외가 아니다. 토르의 종족이 지구에 정착해 일군 뉴 아스카르드를 침범해 아이들을 납치해 간다. 마음의 안식을 찾으려 했던 토르는 동료들과 함께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영화는 유쾌하고 통쾌하며 때론 비장하다. 토르가 아버지 오딘(앤서니 홉킨스)과 동생 로키(톰 히들스턴) 등 주변 사람들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고 ‘우주 해결사’로 살아가는 앞부분부터 유머가 넘친다. 유머는 유치함의 경계까지 다가가나 선을 넘지 않는다.
스타로드(크리스 프랫)와 로켓(목소리 연기 브래들리 쿠퍼), 그루트(목소리 연기 빈 디젤) 등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일행을 모두 만나는 잔재미가 있다. 이들은 짧게 등장하나 각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촌철살인의 대사가 한몫한다. 맷 데이먼과 러셀 크로우가 잠시 얼굴을 비치는 장면들이 눈길을 잡기도 한다.
토르의 인생 여인 제인(내털리 포트먼)의 복귀 역시 볼거리다. 제인은 ‘일’에 바쁜 토르와 갈등하다 오래전 헤어졌고, 물리학자로서 살아가다 최근 말기 암 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부서졌던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통해 강력한 힘을 얻어 ‘마이티 토르’라는 슈퍼 히어로로 거듭난다. 묠니르를 휘두르며 토르를 돕는 마이티 토르를 향한 토르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제인을 여전히 연모하면서도 묠니르를 지닌 그를 질투한다. 동료도 아닌, 연인도 아닌 둘의 관계는 은근한 긴장을 자아낸다.
이야기는 선악이 분명해 단조롭다. 마이티 토르와 킹 발키리(테사 톰슨) 등 토르를 돕는 동료가 많아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야기에 힘을 부여하는 건 악당 고르다. 터질 듯한 근육은커녕 몸이 비쩍 마른 그는 사악한 외모로 관객을 위협한다. 낮은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매, 예리한 턱선 등이 원숙한 연기와 어우러지며 기이한 기운을 뿜어낸다.
영화는 유머와 액션이 적절히 섞이며 여러 재미를 빚어낸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다.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감독답다. 와이티티 감독은 토르를 돕는 코르그 역을 맡아 연기까지 겸해 웃음을 전하기도 한다. 그는 전작 ‘토르: 라그나로크’(2017)에서도 연출과 연기를 함께 했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