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성범죄 가해자가 합의와 무관하게 2차 가해를 했다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성범죄 수정 양형기준을 전날 117차 회의를 통해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수정된 성범죄 양형기준은 오는 10월 1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된다.
양형위는 성범죄 피해자가 피고인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었다면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양형인자에 추가했다. 성범죄 가해자가 2차 피해를 유발했는지 여부는 양형 가중인자 및 집행유예 참작 사유로 고려된다.
기존에도 '합의 시도 중 피해 야기' 여부를 양형인자로 고려했지만, 수정안은 '합의와 무관하게'로 범위를 넓히고 명칭을 '2차 피해 야기'로 바꿨다. 2차 피해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성범죄 특수성을 고려한 조치다.
2차 피해는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거나 피해자 인적사항을 공개하고, 신고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가하는 경우 등에 해당한다. 피해자에 대해 모욕적 발언을 하거나 집단 따돌림한 경우도 포함된다.
성범죄 양형기준의 특별 가중인자에서 사용하던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는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됐다. 성적 수치심이 정조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고, 마치 성범죄 피해자가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조직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형량을 높이는 특별 가중인자도 폭넓게 적용된다. 양형위는 위계상 성범죄의 특별 가중인자로 고려된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의 정의를 기존 신체 또는 정신장애가 있거나, 군대 내 계급, 서열 또는 지휘관계에 있는 경우에서 '군대'를 '군대 등 조직이나 단체'로 바꿨다. '지휘관계'도 '지휘·감독관계'로 폭을 넓혔다.
군형법상 성범죄에 적용되는 특별 가중인자인 '상관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규정'에서 기존 '명시적으로 피고인의 직무상 권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문구도 삭제했다. 적용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성범죄 가해자의 형량을 줄여주는 기준인 '특별 감경인자' 중에선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부분이 삭제됐다.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은 경우에만 합의와 관련된 양형요소로 고려된다.
'고령'도 더 이상 긍정적 일반참작 사유가 아니다. 양형위는 이번 수정안에서 '고령'의 의미가 불분명하고, 재범과의 관련성이 뚜렷하지 않다며 집행유예 등을 고려하는 참작 사유에서 배제했다.
수정된 양형기준에 따라 앞으로 친족관계에서 일어난 강간, 주거침입을 동반한 강간, 특수강간의 권고형량은 가중인자가 있는 경우 종전 징역 6~9년에서 징역 7~10년으로 늘었다. 특별 가중인자가 특별 감경인자보다 2개 이상 많을 정도로 죄질이 나쁘면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강제추행죄 권고형량도 1년씩 늘었다.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이나 특수 강제추행은 가중인자가 있을 때 징역 5~8년, 주거침입 강제추행은 징역 6~9년이 권고됐다. 특히 주거침입이 동반된 강제추행에서 피고인의 형량 감경요인이 없다면 집행유예 없이 실형만 선고할 것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