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 규제 안 돼”… 또 역주행한 미국 보수 대법원

입력
2022.07.01 08:20
"미 환경보호청에 온실가스 규제 권한 없다" 판결
'2030년까지 탄소 절반 감축' 바이든표 정책 타격

미국 연방대법원이 반세기 동안 헌법으로 보장했던 여성의 임신중지(낙태) 권리를 박탈한 데 이어 미국 행정부의 온실가스 규제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놨다. 보수 대법관 6명 대 진보 대법관 3명으로 갈린 대법원의 ‘보수 절대 우위’ 구도가 또 역주행을 허용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대법원은 환경청이 석탄 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방출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결했다. 임신중지권 보장 무효화 판결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다수인 보수 대법관들의 뜻대로 결정됐다.

존 로버츠 대법관은 다수 의견서에서 “전국적으로 전기 생산에 석탄이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배출을 제한하는 것은 현재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일 수 있다”면서도 “그 정도 규모와 파급력이 있는 결정은 의회가 하거나 의회의 명확한 임무를 받은 기관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탈탄소 정책은 좌초할 위험이 커졌다. 전체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30%는 발전소에서 나온다.

백악관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나라를 퇴행시키려는 파괴적인 결정”이라며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법에 따라 부여된 권한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보수 성향으로 재편된 미국 대법원은 여름 휴정기를 앞두고 최근 보수적 판결을 연달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고등학교 스포츠 경기 뒤에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행위는 종교의 자유에 속한다는 판결을 내려 공립학교에서 유지돼 온 정교분리 관행을 후퇴시켰고, 그보다 앞서 22일에는 주정부가 종교색을 띤 학교를 수업료 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모두 보수 대법관 6명은 찬성하고,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반대했다. 24일에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례가 49년 만에 폐기되면서 미국 사회는 찬반으로 나뉘어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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