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위스키 증류소가 가평에 보리를 직접 키우는 까닭은

입력
2022.07.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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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혜택받는 '지역특산주' 제외된 위스키 
오크통 당 위스키 휘발량도 스코틀랜드 기준
생산업체들 "'수입산 위스키 규제'에 맞춰진 국내법"


보리 수확철을 맞은 지난달 17일, 경기 가평군의 한 보리밭에서 이뤄진 보리 수확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인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위스키 생산 목적으로 지난해 10월 파종한 보리를 처음으로 수확하는 자리였다. 이렇게 수확한 보리는 맥아(싹을 틔운 보리)로 만들고 건조하는 위스키 제조의 첫 단계인 몰팅(Malting)을 거치게 된다. 김유빈 쓰리소사이어티스 과장은 "그 동안은 위스키를 만들 때 주 원료로 쓰이는 보리를 주로 수입했다"며 "이번에 국내 위스키 증류소에서 보리를 처음으로 직접 생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보리 직접 재배에는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국내에서 술은 온라인 판매 금지 대상이지만 산업 활성화를 위해 오직 전통주만 온라인에서 팔 수 있고, 주세 50%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다. 현행법에 따르면 전통주에는 ①무형문화재나 식품 명인이 만든 민속주②제조장 소재지 인근 시·군·구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 원료로 제조한 지역 특산주가 포함된다.

반면 지역 특산주 대상이 되는 술 종류에 맥주·위스키·브랜디는 포함되지 않아 아무리 지역에서 얻은 원료로 술을 만들어도 전통주 대접을 받지 못한다.

김유빈 과장은 "특산주는 지역 농산물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류 면허"라며 "남양주 증류소에서 가까운 가평 보리밭에서 생산한 보리로 위스키를 제조해도 지역 특산주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직접 보리를 재배하는 것도 현행법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온라인 판매 가능한 '지역 특산주'에 위스키·브랜디 빠져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이런 상황은 '원소주'와도 대조적이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린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는 온라인에서도 팔려서 눈길을 끌었다. 원소주를 만드는 원스피리츠가 강원도 원주에 농업회사 법인을 세웠고, 원주쌀을 주 원료로 했기 때문에 '지역 특산주' 조건을 채웠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지역 특산주가 농민들이 만드는 술인 '농민주' 개념에서 출발해서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대형 경기농업기술원 기술연구원은 "1993년 농민주 육성사업을 하면서 과실주·탁주·약주·증류주 등 농민들이 만들 수 있는 술로 제한됐다"며 "위스키·맥주·브랜디는 농민들이 제조할 수 있는 설비나 시설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엔 국내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사용, 위스키를 포함해 더 많은 술을 직접 생산하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면 술 종류에 상관없이 지역 특산주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련 논의는 이미 진행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통주 산업 육성을 위해 2010년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5년마다 '전통주 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2차 계획의 마지막 해로, 내년 제3차 기본계획 시행을 앞두고 농식품부와 관련 단체들이 전통주 산업 진흥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도 전통주에 민속주와 국산 농산물을 사용한 일반 주류를 포함시키고, 지역특산주에는 기존 8종에 국산 농산물을 사용한다면 희석식 소주와 맥주, 위스키와 브랜디를 포함해 전통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위스키 수입만 생각한 기존 규제... 이제 생산도 반영해야"


국내 위스키 생산 업체들은 지역 특산주에 위스키가 포함되지 않은 것처럼, '위스키=수입산'이란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한 규제들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여러 행정 절차를 통과하려고 시간과 비용을 들이며 씨름해야 한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가짜 위스키 유통을 막기 위해 도입된 무선주파수인식(RFID) 전자태그가 대표적이다. 위스키 병과 뚜껑을 함께 붙이는 종이 스티커 형태인 RFID는 주류 중 위스키만 의무화돼 있다.

김창수 김창수위스키 대표도 최근 RFID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 대표는 "원래는 자신이 만든 술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는 바로 판매하는 등 다양한 유통경로로 판매할 수 있지만, RFID는 도매로 납품할 때에만 나온다"라며 "RFID가 의무사항이다 보니 이를 확보하기 위해 추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또한 국내 주세법상 위스키와 브랜디의 연 결감량은 오크통당 2% 이내로, 결감량이 2% 이상이면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스코틀랜드 기준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김유빈 과장은 "위스키 결감량은 지역별로 기후에 따른 차이가 있고, 국내는 결감량이 7~10% 선"이라며 "우리 기후에 맞지 않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주류 생산의 다양성을 위해 적은 양의 주류를 생산하는 소규모 주류 제조장에도 세금 혜택이 있지만, 위스키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대형 기술연구원은 "현재는 탁주, 약주, 청주, 맥주, 과실주만 연간 1,000리터(L) 미만을 생산하는 소규모 주류제조장 등록이 가능한데, 여기에 위스키가 포함된 증류주도 넣는다면 더 다양하고 개성있는 술이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