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공공장소에서 권총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한 뉴욕주(州)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잇단 총기 난사 참사 이후 높아지는 총기 규제 강화 여론을 업고 의회가 관련 법안 처리를 앞둔 가운데, 대법원이 정반대의 판결을 내리자 미국 사회가 크게 분열되는 모습이다.
연방대법원은 23일(현지시간) 일반인의 야외 권총 소지를 금지하고, 휴대할 경우 사전 면허를 받도록 한 뉴욕주 총기규제법을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이날 판결은 보수 6명, 진보 3명이라는 대법관 성향에 따라 갈린 예상된 결과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수정헌법 2조는 집 밖에서 자기 방어를 위해 개인의 권총 휴대 권리를 보장한다"며 "뉴욕주의 무기 소지를 위해 필요한 특정한 요건은 그 권리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제기된 총기 규제 법안 처리 요구를 번번이 무산시켰던 공화당 측 주요 논거인 수정헌법 2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총기 사고로 인한 대규모 희생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진보 성향의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대법원이 총기 폭력의 심각성을 해결하지 않은 채 총기권을 확대했다"며 "이번 판결이 총기 폭력에 대응할 능력을 잃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최고의 사법기관이 총기 소지 옹호론자의 손을 들어준 이날 오후 상원은 본회의에서 찬성 65명, 반대 33명으로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총기 규제와 관련된 연방 차원 법안이 통과된 건 29년 만이다. 지난달 텍사스주 유밸디 롭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참사가 계기가 됐다.
법안은 △18~21세가 총기를 구매할 때 범죄기록을 조사하고 △위험 인물의 총기를 압류할 수 있는 '레드플래그법'을 채택하는 주에 장려금을 지급하며 △범죄자의 총기 밀매를 금지하고 총기 소지 금지 제재를 어길 시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을 이르면 24일 밤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면 공표된다.
총기 규제를 놓고 법원과 의회가 상반된 결정을 내리자 미국 사회 역시 두 갈래로 찢어졌다.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즉각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에 "깊이 실망했다"고 밝혔다. 캐시 호컬 뉴욕주 주지사 역시 "매우 충격적"이라며 "암흑의 날이 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소송을 지원한 전미총기협회(NRA)는 "분수령적 승리"라며 환영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판결이 불필요한 정부의 간섭 없이 법을 준수하는 모든 미국인이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를 정당하게 보장했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판결은 뉴욕주처럼 공공장소에서 권총 소지 시 면허를 받도록 한 워싱턴DC와 최소 6개 주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NRA 등 총기 옹호 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패소한 사건들에 대해 집단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보수 우위의 대법관 구성을 볼 때 앞으로 이어지는 총기 규제 관련 소송에서 총기 소지 허용 쪽으로 기울 가능성도 크다.
마이클 월드먼 뉴욕대 로스쿨 브래넌센터장은 '최악의 시점에 나온 최고로 위험한 판결'이라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판결은 단지 뉴욕주에 국한하지 않고, 50개 주의 수백 개 총기 관련 법안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앞으로 거리에는 총기가 더 늘어날 것이며 총격전과 범죄도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