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조선에도 플랫폼기업 있었다?... '조선판 부의 천재들'

입력
2022.06.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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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찬 '조선의 머니로드'

어느 시대나 '돈 냄새' 맡는 데 탁월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유교 이념으로 무장한 조선은 상업을 사농공상 가운데 가장 아래 두고 경시했지만 경제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계층과 분야에서 부를 축적한 집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화폐경제가 꽃피던 조선 후기, 새롭게 등장한 조선판 부자들은 어떻게 부를 거머쥐었을까.

저자는 군인, 상인, 정치가, 세도가까지 실리에 밝았기에 남다른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를 쟁취했던 당대 부자들을 차례로 불러낸다. 역사 커뮤니케이터답게 이들이 부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을 현대 경제학 관점으로 풀어낸 게 책의 특장이다. 플랫폼 경제를 꽃피운 한강 나루의 주막집, 화폐를 독점하고 수익을 올린 악덕 자본가 놀부의 투자 포트폴리오, 국제무역으로 번 막대한 부를 사치로 탕진한 세도가 등 경제학의 관점으로 조선시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루 주막집을 금융플랫폼으로 비유한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주막이라고 하면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단순 숙박업소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주막에서 늘 돈이 오갔다는 점을 주목했다. 한강 포구, 팔도의 물산이 모여드는 곳에 자리한 주막은 서울에 물건을 대려는 사람으로 인산인해였을 터. 이곳을 장악한 객주는 도매업, 물류업, 대부업 등 각종 사업 장소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챙겼다. 지금의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주막집에서 형성된 새로운 금융 생태계가 조선의 근대적 경제 발전에 자양분이 됐다고 봤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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