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PC방·노래방, 신호등, 공동묘지...건축 속에 담긴 삶과 사람

입력
2022.06.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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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임우진 첫 책 '보이지 않는 도시'

인류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는 유기체로 표현되곤 한다. 건축 환경과 인간의 상호 작용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도시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도시의 허점이 발견될 때 이를 풀어낼 실마리를 물리적 건축 이면의 사람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인 최초 이탈리아 피렌체 국제현대미술비엔날레 수상자인 임우진 건축가는 첫 책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일상적 도시 공간에 내포된 건축과 사람의 상호 작용을 풀어낸다. 한국에서 30여 년, 파리에서 20여 년 생활하며 두 문화권의 거주민이자 이방인으로서 독특한 시각을 갖게 된 저자는 도시의 낯익은 외양에 숨겨진 사람과 삶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예컨대 코로나19 확산으로 업종이 위축되긴 했지만 노래방, PC방처럼 '방'이 붙은 공간은 한국 도시의 상징적 풍경의 일부다. 방은 한국인의 공간 정체성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다. 벽으로 구분되거나 최소한 칸막이로 구획된 방이라는 이름의 공간은 '우리'라고 부를 만한 공동체 의식이 있을 때만 공유할 수 있다. 방은 가깝지 않은 사람과는 같이 들어가지 않는다.

서구의 길이 도시 생태계를 구성하는 뼈대로 간주되는 것과 달리 한국의 길은 도시 신경계로서의 위상을 부여받아 본 적이 없다. 길은 그저 건물의 연결로였다. 많은 이들이 법적으로 통행에 할애된 도로인 줄 알면서도 우리 집과 다른 집 사이에 있는 공터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한국의 길은 통행은 물론 상업, 휴식, 오락 등의 기능이 공존하는 일종의 '도시적 공터'가 됐다.

서구의 도시 문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지 않고 항상 문제를 일으킬 대상으로 여긴다. 유럽의 운전자 신호등은 횡단보도 앞에 위치해 있다. 정지선을 넘어설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서울의 횡단보도가 운전자에게 잘 보이도록 횡단보도 건너편에 멀찌감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에서 기피 공간인 공동 묘지가 유럽에서는 도심에서 가까운 밝은 장소인 것도 역사적 배경이 만든 각 도시의 속성이다. 조선시대 유교 영향으로 시신 처리는 개인과 가족의 영역이 됐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고인의 육신을 멀리 야산에 매장하고 명절에 한 번 방문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여겼다. 공공의 무관심과 개인의 임의적 매장으로 한국 공동묘지는 추모가 아닌 혐오의 공간이 됐다.

이 같은 비교가 한국 도시의 부족한 면을 비판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다른 곳과의 비교는 나아지기 위한 영감을 주는 용도일 때 의미가 있다"고 적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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