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히틀러에 저항한 시민들의 용기

입력
2022.06.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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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다쓰오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

나치 독일이 12년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독일 국민의 전폭적 지지 덕이었다. 대공황의 늪에 빠져 실업률이 40%에 이르던 시기, 히틀러는 '위대한 아리아인은 열등한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존재'라면서 고용 확대와 경기 회복을 약속하며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 ‘국민이 동의한 독재’였기에 히틀러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무모한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 시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외롭고 고독한 투쟁이었다.

일본 교육학자이자 서양학자인 쓰시마 다쓰오가 쓴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은 이처럼 감시와 탄압, 밀고가 일상이었던 나치 독일에서 국가의 지시나 강요에 순종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굳건한 신념으로 저항운동을 펼쳤던 용기 있는 시민들을 조명한다. 원저의 부제인 ‘반나치 시민의 용기란 무엇인가’는 ‘시민의 용기’라는 뜻의 ‘치빌쿠라제(zivilcourage)’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치빌쿠라제는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덕적 이유에서 행동하는 용기’를 말한다.

나치 독일에서 일어난 반나치 저항운동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모티프가 된 ‘7월 20일 사건’과 뮌헨대 학생 조피 숄, 한스 숄 남매를 주축으로 모였던 백장미 그룹 정도다. 저자는 이 두 사례는 물론 나치 독일 12년간 일어났던 저항운동의 주요 사건과 관련자 그리고 유족의 이야기까지 묶어 저항운동의 전체 모습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저자는 우선 다수의 국민이 나치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구조를 들여다보고 나치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본성을 이용해 국민을 조종했는지 설명한다. 독일 내 반나치 저항운동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펼쳐졌는지 살피려는 시도다.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면면은 평범한 소시민에서 상류층 지식인까지 다양했다. 의사, 판사, 제과점 사장, 노동자, 기자,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의 시민이 모인 ‘에밀 아저씨’ 그룹은 유대인을 돕는 활동에서 시작해 나치 타도를 목표로 하는 정치적 행동으로 활동을 넓혔다. 백장미 그룹은 전단지와 우편을 통해 히틀러의 범죄 행위를 고발했다. 교수와 정치인, 종교 지도자, 법률가 등 지식인이 중심이 됐던 크라이자우 서클은 나치 독일 이후의 새로운 독일을 구상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당국에 체포돼 처형됐고 살아남은 이들도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히틀러에게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유족은 경제적 곤궁 속에서도 고인의 뜻을 전후에 계승했다. 저자는 독일 저항시민의 모습을 전하는 것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에 진지하게 응답하고 행동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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