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수차례 스토킹 끝에 살해한 김병찬(36)이 1심에서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김병찬이 이전에 벌금형 처벌만 받은 점을 고려하면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유족들은 "가해자를 위해 법이 있는 것이냐"며 분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정진아)는 1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과 스토킹범죄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병찬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15년간 위치추적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보복살인죄는 형사사건 수사와 관련된 고소·고발 등에 대해 보복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경우 적용된다.
김병찬은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전 여자친구 A씨의 주거지를 침입해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김병찬은 A씨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한 혐의도 받았다. A씨는 김병찬을 경찰에 다섯 차례 신고했고, 100m 이내 접근 금지 등 신변보호 조처까지 받았지만 무참히 살해됐다.
검찰은 김병찬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김병찬이 A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데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김병찬이 범행 방법과 흉기 등을 수차례 검색한 사실이 휴대폰 포렌식 결과 드러났고 △지하철 화장실에 흉기를 버리는 등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도주 방법까지 계산한 점에 비춰 '계획범죄'가 입증된다고 봤다.
김병찬은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항변했다.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에서 나오는 경찰관 목소리를 듣고 흥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김병찬 측은 "순간적으로 욱했다"며 "범행을 준비했다면 (김씨가 거주했던) 부산에서부터 모자와 흉기를 다 구입해서 올라왔을 것"이라 주장했다.
재판부는 김병찬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김병찬은 피해자가 다시 사귀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거침입과 협박을 일삼았고, 끝내 두 손을 모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했다"며 "유족은 딸을 잃고 헤어나오기 힘든 고통에 빠졌고, 견뎌내야 할 슬픔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김병찬의 살해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는 대목에서 유족들은 몸서리를 쳤고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다만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김병찬이 사건 범행 이전에는 두 차례 벌금형 형사처벌밖에 없었고, 사건 전에는 (이 정도 수준의) 범행 성향을 보인 적은 없었다"며 "사회와 영구적으로 격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의 어머니 B씨는 기대와 다른 판결이 나오자 오열했고, 아버지 C씨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B씨는 기자회견에서 "(재판부가) 그렇게 나쁜 놈을 사형은커녕 무기징역에도 처하지 않았다"며 "대한민국은 우리 딸을 두 번 죽였다"고 분노했다. C씨도 "판사가 경찰·검찰 조사를 기반으로 혐의를 살펴봤다면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가해자를 위해 법이 있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