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물렁한 돌'은 형용모순이 아니다. 옴폭 파인 돌의 허리를 철사로 묶었더니 딱딱한 돌멩이가 돌연 물렁물렁해 보인다. 철사나 노끈으로 돌, 도자기 같은 일상의 사물을 묶는 작업을 60여 년 일관해온 전위적 조각가 이승택(90)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깎아내거나 붙이는 기존 조각의 문법에 이른바 '비조각'으로 맞서며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해온 그의 개인전 '(언)바운드[(un)Bound]'가 다음 달 3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작가의 비조각은 바람, 연기, 불과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자연 현상을 순간적으로 '조각'한 '비물질' 연작과 사물을 묶거나 동여맨 흔적을 남기는 방식의 '묶기(bind)' 시리즈로 크게 나뉜다. 이 중 전시는 '묶기' 연작을 집중 조명한다. 당대 작가들과 구별되는 그만의 미적 방법론이다.
눈여겨볼 것은 1957년과 1960년대 작업한 '고드랫돌(발·돗자리를 엮으며 재료를 감아 늘어뜨리는 데 쓰는 돌)'. 지하 전시장에 놓인 이 작품에서 작가의 '묶기' 작업의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 덕수궁미술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고드랫돌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이를 직접 만들어 집에 매달아두고 들여다봤다고 한다. "재료의 물성에 대한 착시를 일으키며 생명력에 대한 환영을 불러오는"(세계적 전시기획자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 중) 고드랫돌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며 탄생시킨 게 '물렁물렁한 돌' 시리즈다.
전시에서는 옹기를 층층이 쌓거나 천장에 줄줄이 매단 남다른 스케일의 '오지' 연작과 노끈을 활용한 '종이 판화', '매어진 백자', '매어진 캔버스' 등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검은 머리카락을 활용한 '춤', '털 난 캔버스' 등 회화 연작도 흥미롭다.
이승택은 조각의 개념을 '형태에서 상태로'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재료 실험과 파격적 설치 방식을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전통적 조각 재료 대신 고드랫돌, 옹기, 노끈, 각목, 한지 등을 비조각의 재료로 삼았다. 설치미술이라는 개념조차 없고 조각 작품은 좌대에 놓던 1960년대 그는 작품을 바닥에 놓거나 벽과 천장에 매달았다. '미술계 이단아'라는 꼬리표가 이름 뒤에 따라붙었다. '이게 조각이냐'는 미술계 혹평과 무시가 뒤따랐다. 일대 반전을 이룬 건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받으면서다. 77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