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친구 피 묻히고 죽은 척” 증언... 美하원 총기규제법안 통과

입력
2022.06.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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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총기 난사 관련 청문회 열고 증언 청취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해달라" 읍소에, 규제 법 통과
상원, 민주·공화 50대 50..."상원 통과 가능성 희박"
"총에 맞고 쓰러진 친구의 피를 내게 묻히고 죽은 척했어요."

지난달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롭 초등학교 총기난사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미아 세리요(11)는 8일(현지시간) 참혹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리요는 이날 미국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회가 워싱턴 의회에서 개최한 총기 난사 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더 이상 학교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며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세리요뿐 아니라 뉴욕주 버펄로 슈퍼마켓 총기난사 사건의 유족과 생존자들도 함께 참석해 총기 규제 강화를 읍소했다. 버펄로 사건 생존자 자이르 굿맨의 어머니인 제네타 에버하트는 “더 강력한 총기 규제를 통과시키지 않는 의원들은 대량살상을 용인하는 것과 같다”며 “(이러한 정치인들을) 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존자와 유족들의 호소에 화답하듯 하원은 이날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포괄적인 법안 ‘자녀보호법(Protect Our Kids Act)’을 찬성 223 대 반대 204로 통과시켰다. 법안에는 △돌격소총 구매 가능한 법적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상향 △일련번호 없는 이른바 ‘유령 총’ 대상 규제 강화 △대용량 탄창 판매 금지 △자동소총의 연사력을 자동소총처럼 만들어주는 장치인 ‘범프스톡’ 금지 등이 담겼다. 총기 소유 자유를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2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총기 소유를 어렵게 하도록 규제하는 내용들이다. 캐럴린 멀로니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회 위원장(민주ㆍ뉴욕)은 “어떤 민간인도 돌격소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해,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미국 민주당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법이 실제 자녀들을 총기로부터 보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제 미국 주요 언론들은 하원을 통과한 법이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AP통신은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확률은 제로(0)에 가깝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미국 상원은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을 차지해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진 상태다. 공화당이 법안 상원 통과를 막기 위해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에 착수할 경우,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필요한 공화당 소속 의원만도 최소 10명이다. CNN은 “상원에서 초당파적 협상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극도로 양극화한 정치 환경은 물론 공화당의 광범위한 반대를 고려할 때 상원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총기 소유 규제 강화 여부에 이목이 쏠리는 상황에서, 규제에 찬성하는 인물이 연방대법관 자택에 총기를 들고 침입하려다 체포되는 어이없는 사건도 발생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날 오전 1시 50분쯤 메릴랜드주 셰비체이스 소재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자택 인근에서 총기로 무장한 니컬러스 로스케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FBI는 용의자가 롭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로스케가 캐버노 대법관을 ‘총기’로 살해하려고 했던 이유는 “(보수적인) 캐버노 대법관이 총기 규제에 반대할 것 같아서”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용의자가 최근 유출된 낙태권 관련 대법원 결정문 초안에 대해 분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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