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상의 압력과 관성에 맞선 스무 명...각별한 기록의 '사람책'

입력
2022.06.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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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전 기자 인터뷰집 '각별한 당신'

한 사람이 진솔한 대화를 통해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타인과 공유할 때 '사람책'이라는 표현을 쓴다. 종이로 인쇄된 책이 아닌 사람이 스스로 책이 된다는 의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듣는 인터뷰는, 말하자면 사람책을 읽는 행위다.

'각별한 당신'은 지난달 30여 년의 기자 생활을 마무리한 김종철 전 한겨레 기자의 인터뷰집이다. 2017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김종철의 여기'에서 만난 백여 명 중 스무 명의 이야기를 골랐다.

저자는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람책이라고 명명했다. 오래 대화하고 기사를 준비하면서 인터뷰 대상자들이 저절로 자신의 거울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양적 지식이 늘었고, 생각의 폭을 넓히고 내면의 성장을 가져다주는 질적 배움을 얻었다고 말한다.

책에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이기는 식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세상의 압력과 관성에 맞서 싸우며 고독을 감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한국 최초의 성전환 커밍아웃 군인인 고(故) 변희수 하사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군의 차별과 맞서 싸웠다. '전태일 평전'의 실제 '시다(보조원)' 모델인 신순애 전 청계피복노동조합 부녀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회약자를 위해 투쟁하다 옥살이를 했다.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는 자신이 믿고 따르는 탈자본주의적 가치, 생태순환적 삶을 '나부터' 실천하기 위해 정년보다 6년 일찍 교수를 관뒀다.

각각의 인터뷰는 개인의 서사에 머물지 않고 공존과 연대의 기록으로 확장되는 공통점도 지녔다.

성폭력에 저항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둔갑돼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최말자씨는 사건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한평생 억울함과 분노를 가슴속에 묻고 산 최씨는 "언제까지 이 사법이 안 변하고 갈 것인지, 이 대한민국 여성들이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 시위꾼'으로 불릴 정도로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에 앞장서 온 송경동 시인은 "인간답게 사는 게 먼저이고 중요한 것이지, 시인이라는 명예나 위상이 더 중요한 건 아니다"고 강조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민중가요의 아이콘이었던 가수 윤선애는 이제 "우리를 위로할 수 있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노래하고 있다.

책에 실린 스무 명은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높거나, 고난을 이겨내고 얻은 세속적 성공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묵묵히 용감하게 자신을 지켜낸 '각별한 당신'의 이야기이기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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