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한 화학업체가 최고경영자(CEO)의 성희롱 발언에 상장폐지까지 당하게 됐다. ‘오너 리스크’가 기업에 얼마나 큰 타격을 입히는지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7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화학품 제조·운송 업체 DGL이 뉴질랜드 증시에서 상장폐지를 당하는 등 경영난을 겪는 배경에 사이먼 헨리 CEO의 성희롱 발언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헨리는 4월 뉴질랜드 매체 '내셔널 비즈니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기업과 같은 시기 급성장하던 밀키트 배달 기업 '마이 푸드백'을 설명하던 중 이 기업의 창업자인 나디아 림을 저격했다. 림이 회사 주식을 팔기 위해 ‘섹슈얼리티’를 이용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헨리는 림을 "유라시아 솜털"이라고 부르며 "(림이)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가슴골을 드러낸 모습이 투자 설명서 중간에 있다"고 희롱했다. ‘유라시아 솜털’은 아시아계 뉴질랜드인인 림의 인종과 외모를 비꼰 혐오적 어구다. 그는 발언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기자에게 "내 말을 인용해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발언이 보도되자 즉각 파문이 일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까지 나서 그의 발언이 "림 본인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건 물론 모든 여성에게 모욕적"이라고 지적했다. 니콜라 윌리스 뉴질랜드 국민당 부대표도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했다. 림 본인은 “나는 독종(tough cookie)이라 괜찮지만, 다른 유색 인종 여성들이 그 글을 읽고 상처를 입을 것을 생각하면 슬프다”고 말했다.
헨리는 이후에도 림에게 두 줄짜리 무성의한 사과를 보내며 비난을 자초했다. DGL 이사진이 뒤늦게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라며 기업 문화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업가치는 걷잡을 수 없이 훼손됐다. 지난달 3일 인터뷰가 보도된 후 약 2주 만에 DGL 주가는 30% 이상 급락했다. 7억 달러(약 8,800억 원) 규모 DGL 주식을 보유한 헨리의 자산은 보도 후 일주일 만에 1억4,000만 달러(약 1,800억 원)가 증발했다. 급기야 뉴질랜드 금융당국은 이달 말 DGL을 증시에서 퇴출(상장폐지)하기로 결정했다. FT는 "DGL 창업자의 여성혐오적 발언 등 CEO와 관련한 논란이 상장 기업에 파괴적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례”라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