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화된다면 제일 먼저 오디션을 보고 싶다”(구교환), “그래픽노블의 새로운 출발점”(봉준호), “기괴한 애잔함과 역동적인 섬세함”(류승완),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정우성)
도대체 누구길래 내로라하는 영화인들을 한데 불러모은 것일까? 조성환 작가의 그래픽노블 ‘재생력’은 띠지에 적힌 화려한 추천사 면면만으로 일단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비밀은 책을 펼치는 순간 알 수 있다. 역동적인 화면 전개가 마치 영화를 재생한 것처럼 펼쳐진다.
아니나다를까 ‘옥자’, ‘남산의 부장들’, ‘모가디슈’, ‘고요의 바다’ 등 한국 대작 영화의 스토리보드를 그린 이가 다름아닌 조 작가다. 카메라 앵글과 조명, 액션과 대사를 포함해 영상물의 장면을 미리 그림으로 정리하는 스토리보드는 영화나 드라마, CF 제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초석이다. 스토리보드 작가에서 그래픽노블 작가로 변신한 그를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지난달 출간된 '재생력'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죽은 사람을 재생시키는 기술이 개발돼 이를 둘러싸고 부딪히는 인간들의 욕망을 그린다. 생명을 기술로만 여기는 과학자나 목숨을 값으로 셈하는 킬러 등 인간성 실종의 시대에 한번 죽었다 되살아난(재생된) 인간이 가장 순수하고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부활한 인간’은 거슬러올라가면 프랑켄슈타인에 닿는 오래된 문학적 주제다. 조 작가에게 ‘재생력’은 가장 사적인 경험에서부터 출발했다.
“가까운 사람의 때 이른 죽음을 겪은 뒤에, 너무 슬프고 안타까워서 그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를 다시살려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에서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 '재생력'이에요.”
첫 작품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완성도는 그의 다채로운 이력이 바탕이 됐다. 조 작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녔다. 훗날 ‘늑대소년’ ‘승리호’ 등을 만든 조성희 감독을 선배로 만난 곳이다. 조성희 감독이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계로 떠나는 것을 보며 자극을 받아 뒤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뉴욕시립대 브루클린 컬리지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그는 광고 영상과 독립 영화의 스토리보드를 그리다가 인생을 바꿀 기회를 만났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스토리보드 작업이었다.
“2015년 미국에서 봉준호 감독님의 차기작이 제작된다는 기사를 봤어요. 한국으로 들어와 무작정 스토리보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냈는데 정말로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사실 봉 감독님께서는 콘티를 직접 그리세요. ‘살인의 추억’, ‘마더’, ‘기생충’ 전부 본인이 그리셨죠. 그런데 ‘옥자’는 시각 특수 효과(VFX)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이다 보니 전문 스토리보드 작가가 필요해 상업영화 경험이 전혀 없던 제가 운 좋게도 뽑힌 거예요.”
‘옥자’ 이후로는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필요도 없이 러브콜이 쏟아졌다. ‘남산의 부장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모가디슈’, ‘고요의 바다’ 등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의 스토리보드 작업을 했다. 한참 일감이 쏟아지던 때, 개인 작업을 위해 ‘잠시 멈춤’을 외쳤다. 작업실을 구해 8개월간 ‘재생력’을 쓰고 그렸다. 완성한 만화를 하드커버로 제본해 출판사와 추천사를 써준 네 명의 감독에게 보냈다. “작품에 자신이 있었어요. 독립출판으로 낼지언정 무조건 네 분 추천사는 받겠다고 생각했죠.” 결과적으로 자신감은 들어맞았고 쟁쟁한 감독들이 보증하는 그래픽노블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과거 독립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최근 영화 시나리오도 쓰며 다방면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다만 “‘재생력’이 영상화된다면 연출만큼은 다른 분이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쟁쟁한 감독님들과 일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연출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러니 감독님들, ‘재생력’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