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할 때부터 출근했으니까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여기저기 매장만 옮겨다녔을 뿐이지 이 백화점에서 계속 일했다.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고...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1일 대전 중구 문화동 백화점세이(세이) 본점 6층 생활용품 매장에서 만난 신문희 매니저(53)는 세이백화점 폐점 얘기를 꺼내자 눈물을 끌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신 매니저는 "백화점 사장님, 부장님, 그리고 직원들 모두 가족같이 지내며 정말 즐겁게 일했는데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가끔 내 어깨를 토닥이거나 끌어 안고 같이 눈물을 흘리는 단골손님도 있다"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세이는 1996년 8월 대전 중구 오류동에서 문을 열었다. 대전 중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CGV영화관이 있고, 바로 뒤에는 재개발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형성돼 인근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또 대전 중구와 서구·동구의 남부, 충남 계룡시와 논산시 주민들의 발길도 이어지는 곳이다. 둔산동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롯데백화점과도 상권이 겹치지 않는다. 한때 개점 기념일에는 김건모, 코리아나 등 유명 가수들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고, 맥도날도 매장이 대전에선 처음으로 입점하면서 지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덕분에 동양백화점, 유락백화점, 대전백화점이 차례로 문을 닫은 후에도 구도심 상권의 중심축 역할을 하면서 향토백화점의 명맥을 이어왔다.
그런 세이가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운영사인 (주)세이디에스는 지난달 초 자산관리회사인 투게더투자운용과 세이 매각계약을 체결했다. 투게더자산운용은 대우건설과 기업은행, 교보증권, 해피투게더하우스 등 4개사가 공동출자한 회사로, 지난 1월에는 세이 탄방점 건물도 매입했다. 투게더자산운용은 당분간 재임대(마스터리스) 방식으로 세이를 운영하다 폐점한 뒤 건물을 허물고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건립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이 매각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으로 소비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변화한 데다 대전현대아울렛, 대전신시계 아트앤사시언스 등 대형 유통업체가 지역에 잇따라 개점하면서 경영난이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장사가 안 되니 입점 업체들이 줄줄이 빠져나갔고, 고객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세이 매장을 둘러보니 곳곳의 매장이 텅 비어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20여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던 2층 스포츠매장에는 4개 브랜드만 남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층 주차장 한켠에 있던 자동차 정비업체도 외부에 공간을 마련해 옮겼다. 5층의 아동 매장도 키즈카페와 중저가 의류 브랜드 등 일부만 남아 있다. 4층(남성복)과 1층(여성복) 곳곳의 빈 매장에선 마네킹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1층 매장에서 만난 박영미(45) 매니저는 "15년 동안 세이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도 친구들과 끼리끼리 모여 영화를 보고 오락을 하면서 추억을 만든 곳이다"라며 "막상 문을 닫는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착잡한 마음은 단골 고객들도 마찬가지. 이날 가족들과 영화를 보기 위해 세이를 찾은 유형호(42)씨는 "이 곳엔 극장은 물론, 서점, 의류, 문구용품까지 다 있다"며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세이백화점이 없어진다니 섭섭한 마음을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이 관계자는 "계속 운영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입점업체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매출이 크게 떨어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며 "임대 운영 기간을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당분간 영업하다가 종료할 예정이다. 남은 입점 업체들을 같은 층으로 모으는 등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 영업을 종료할진 모르지만 그때까지 고객들이 계속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세이 폐점에 대한 섭섭함과 달리 인근 상인들 사이에선 상권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엿보인다. 용두동 한 상인은 "백화점 대신 주상복합이 들어오면 기존 세이 고객들이 한번이라도 (용두동 상권을) 더 찾을 테고, 주상복합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도 생기지 않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