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혈중알코올농도 추정치, 피고인에 유리한 시점부터 계산해야"

입력
2022.06.06 16:00
10면
음주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쟁점
하급심 "혈중 알코올 농도 0.03% 이상" 
대법서 무죄 반전 "0.028% 이하로 봐야"
"음주 시작 시점으로 위드마크 계산해야"

음주운전 처벌을 위한 혈중 알코올 농도 추정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산해야 할까. 술자리를 파한 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계산 시점은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처벌기준 수치(0.03%)를 넘겼는지 판단하는 중요한 변수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최근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 보냈다. 피고인에 가장 유리한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읍 시내 음주운전... 하급심에선 유죄

A씨는 지난해 1월 오후 3시 전북 정읍 시내에서 14km가량 음주운전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첫 번째 운전을 끝내고 인근 식당에서 술을 마신 뒤 같은 날 오후 5시 4km를 운전한 혐의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기준(0.03%)을 초과했다고 봤다. '위드마크(Widmark) 공식'을 적용한 결과 첫 번째 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추정치는 0.041%, 두 번째 운전 때는 0.170%로 산출된 것이다. 위드마크 공식은 마신 술의 알코올 함유량, 음주량, 체중 등을 고려해 시간 경과에 따른 혈중 알코올 농도를 역추산하는 기법이다. 재판부는 A씨에게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A씨 측은 위드마크 공식 적용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29%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가 최종 음주 시점, 몸무게, 음주량 등을 잘못 대입해 혈중 알코올 농도를 높게 계산했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에게 가장 유리한 최종 음주시점과 몸무게 등을 대입해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를 초과한다는 취지였다.

"음주 시작 시점으로 알코올 농도 계산해야"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혈중 알코올 농도를 추정할 때 음주 종료가 아닌 시작 시점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혈중 알코올 농도 감소기에 운전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한 음주 시작 시점부터 곧바로 생리 작용에 의해 알코올 분해가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의 알코올 분해가 항소심 판단보다 50분 일찍 시작됐다고 봤다. 이를 토대로 다시 계산한 결과 A씨의 첫 번째 음주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28% 이하로 추정됐다. 첫 번째 음주운전은 무죄라는 얘기다.

대법원은 아울러 2회 이상 음주운전을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 적용 여부도 다시 살펴보라고 주문했다. △첫 번째 음주운전은 사실상 무죄라서 2회 이상 음주운전이 아니고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1월 해당 법률을 위헌 결정했으니 공소장 변경 등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규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