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 ‘침묵’ 상영회장에 억지로 들어오려는 혐한 우익 단체 간부를 막으려던 일본인 ‘카운터’ 활동가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카운터란 거리에서 재일코리안이나 한국·중국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우익 단체의 차별 발언을 막는 반차별 활동가들을 뜻한다.
3일 일본 요코하마지방재판소(지방법원)는 지난 2018년 10월 16일 가나가와현 치가사키 시민문화회관에서 당시 ‘침묵’ 상영회장에 들어오는 우익 인사를 막으려다 폭행 및 상해 혐의로 기소된 두 사람의 일본인 카운터 활동가에게 각각 10만 엔과 20만 엔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앞서 박수남 감독과 딸 박마의 씨 등이 구성한 ‘침묵 상영 실행위원회’로부터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행사장을 지키다, 우익단체 일본제일당의 가와사키본부장을 맡고 있던 와타나베 겐이치가 상영회장에 무리하게 진입하려 하자 그를 막았다. 서로 밀며 대치하던 중 와타나베가 갑자기 네 계단 밑으로 떨어지더니 바닥에 누운 채 긴급 신고를 했다. 와타나베는 활동가들이 밀쳐서 굴러 떨어졌다고 했으나, 스스로 발을 헛디딘 것인데 연기를 했다는 것이 피고인 측의 주장이다.
당시 출동한 경찰은 몸싸움 끝에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파악했으나, 한참 후 검찰이 경찰에 보강 수사를 지시하더니 정식 기소를 했다. 공판에서 검찰은 와타나베의 일방적 증언 외에 넘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방범카메라 영상이나 목격자 증언 등 기소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를 충분히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피고인이 밀쳐서 넘어진 것으로 추정했고, 와타나베가 상영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진입하려 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무리하게 입장하려 한 것은 맞지만 확성기 등을 들고 있지 않았으므로 방해할 목적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논리다.
판결 후 기자회견에서 피고인과 변호인단은 ‘부당 판결’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항소 의사를 밝혔다. 벌금형을 선고 받은 한 카운터 활동가는 “나는 와타나베를 계단에서 밀지 않았다.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애초 경찰 수사 방향과 달리 검찰이 2년이나 지난 후에 우리를 기소하는 쪽으로 바꾼 경위가 불투명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침묵’ 상영 실행위원회도 판결 직후 성명을 발표하고 “오늘의 판결은 차별 행위를 시인하고 조장하는 것으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위원회는 “폭행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나 목격자 증언도 없는데 조서 내용도 마치 유도된 것처럼 변경됐다”며 “폭행 사건 자체가 정치적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박수남 감독도 “너무 억울한 판결이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