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릉도에 1만 톤급 이상의 초대형 여객선을 띄우려는 선사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초 경북 포항~울릉 항로에 1만5,000톤급 카페리를 취항하려다 밀려난 ㈜에이치해운이 이번에는 계열사가 운항하는 경북 울진~울릉 항로에 투입하려고 하자, 포항~울릉 항로에 1만 톤급 초대형 여객선 '뉴시다오펄'호의 대체 선박을 설계 중인 울릉크루즈㈜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5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해양수산부(해수부) 여객선 현대화펀드 자문단은 이달 중 전남 고흥과 제주 서귀포를 오가는 카페리 ‘선라이즈제주’호의 항로를 울진~울릉 구간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해 1월 포항~울릉 항로의 대형 카페리 운영 사업자 공모 때는 동일한 선박으로 신청한 에이치해운의 서류를 반려해 선사와 법적 다툼까지 벌였으나, 1년 만에 입장이 바뀐 셈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작년에는 취항한 지 1년도 안 돼 (항로 변경)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올해는 일단 요건을 갖춰 논의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선라이즈제주호는 해수부가 세월호 사건 이후 연안 여객선의 안전을 강화하겠다며 선박 제조비용의 절반을 15년간 무이자로 빌려주는 현대화펀드 사업으로 탄생한 배다. 고흥~서귀포 항로를 운항하는 조건으로 선박 제작비 총 476억 원 중 절반을 지원받았다.
해운업계는 해수부가 선라이즈제주의 계속된 적자로 자금 회수마저 어려울 수 있고, 울릉 항로 수익이 제주 항로보다 나을 것으로 판단해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울릉 항로는 지난해 9월 울릉크루즈의 1만1,515톤급 초대형 카페리 취항 후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관광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선라이즈제주의 움직임에, 초대형 여객선 '뉴시다오펄'호를 띄운 울릉크루즈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뉴시다오펄호는 중국과 전북 군산을 다니던 국제 크루즈선을 임차한 배로, 울릉크루즈는 선라이즈제주호처럼 해수부의 여객선 현대화펀드로 초대형 카페리를 건조할 계획이다.
해수부 현대화펀드는 선박 건조비용의 절반을 15년간 무이자로 빌려주는 파격적인 지원 대신, 시장성과 수익성을 면밀히 따지는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초대형 카페리인 선라이즈제주가 울릉 항로에 뜨면 뉴시다오펄호의 수익은 지금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울릉크루즈 관계자는 “뉴시다오펄호가 잘 다니고 있지만 중국과 군산을 오가던 크루즈 선박이라 울릉 항로에 최적화돼 있지 않아 여객선을 건조해야 한다”며 “현재 설계를 진행 중으로, 연내 현대화펀드를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선라이즈제주호의 노선 변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배가 다닐 울진 후포면 어민들은 후포항의 정박 공간 부족을 이유로 반대하고, 기존 제주 항로의 서귀포 주민들은 ‘먹튀 선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후포항의 한 어민은 “가뜩이나 선석이 부족한데 선라이즈제주호는 지금 다니는 배보다 3배 이상 커 어선이 댈 수 있는 자리가 없다”며 “해수부가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고 강행한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경실련도 지난 4월 26일 성명을 내고 “서귀포시는 선라이즈제주호 운항에 성산항 항만 기반 시설비로 32억 원을 투입했다”며 “선라이즈제주호의 운항 중단은 제주도민을 기만하는 행위로 제주도의회는 물론 감사원도 공적자금 지원 과정에 부실한 용역은 없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에이치해운이 서귀포 주민과 울진 지역 어민들을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해수부가 노선 변경을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