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들여온 반달가슴곰, 18세 맞아 첫 증손주 봤다

입력
2022.05.3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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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러시아에서 온 1세 곰 'RF-05'
방사돼 빠르게 적응... 4代 대가족 꾸려

올해로 18세가 된 지리산의 반달가슴곰 'RF-05'는 지난 겨울 '증조할머니'가 됐다. 2004년 러시아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올 때만 해도 1세의 작은 새끼곰이었는데 어느새 새끼 10마리를 낳은 데 이어 '증손주'까지 본 것이다. 국내에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시작된 이래 4대가 태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1일 환경부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RF-05는 2004년 반달가슴곰 복업 사업을 위해 우리나라로 들어와 지리산국립공원에 방사됐다. RF-05라는 이름은 러시아(R)에서 온 암컷(Female)이라는 뜻이다. 05는 관리번호다. 한국에서 태어난 반달가슴곰은 앞에 K가 붙는다.


RF-05는 어쩌다 우리나라에 왔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호랑이와 반달가슴곰 등 대형포유류가 계획적으로 포획된 데 이어 1970년대까지 곰 사냥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반달가슴곰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 1980년대에는 보신 문화로 인한 웅담 채취 때문에 반달가슴곰이 사실상 절멸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정부는 우리나라 반달가슴곰과 같은 유전자를 지닌 곰을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러시아에는 한반도의 반달가슴곰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종의 반달가슴곰이 자연에 대거 분포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에서도 외교적 선물 등으로 반달가슴곰을 데려왔지만, 개체수가 많지는 않다. 환경부 관계자는 "복원에 성공하려면 가족이 아닌 개체를 여러 마리 데려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자연개체수가 많아야 한다"며 "중국, 북한에도 같은 종의 곰이 있지만 러시아에서 많이 수입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증손주 본 첫 개체... 4대까지 대가족 꾸려

우리나라 땅을 밟은 RF-05는 한 달여 검역을 거친 뒤 지리산에 방사됐고, 빠르게 적응했다. 출산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회에 걸쳐 8마리를 출산했다. 올해도 2마리를 출산했는데, 곰의 평균 수명이 25년인 것을 감안하면 노산임에도 건강상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RF-05는 국내에 들여온 반달가슴곰 중 처음으로 '증손주'를 본 개체이기도 하다. RF-05가 낳은 암컷 'KF-52'가 또 암컷 'KF-94'를 낳았고, KF-94가 증손주를 출산한 것이다. 4대 출산은 복원사업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지난 겨울에는 RF-05의 새끼 2마리와 증손주 1마리 외에도 2마리가 더 태어났다. 2014년생 KF-47이 낳은 새끼들이다. KF-47은 앞서 2018년에 2마리, 2020년에 1마리를 출산했다.


지리산에만 반달가슴곰 79마리... "포화상태"

반달가슴곰 복원이 착실히 진행되면서 현재 지리산에 서식하는 개체수는 이번에 태어난 새끼를 포함해 총 79마리로 늘었다. 당초 목표치인 50마리 이상을 달성한 셈이다.

문제는 지리산이 포화상태에 달했다는 점이다. 지리산권역의 먹이자원과 개체 행동권, 서식 위협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반달가슴곰 적정수용력은 56~78마리이고, 최적은 64마리다.

지리산이 북적거리자 일부 개체는 이미 주변의 다른 산으로 이동했다. 현재 지리산권역을 벗어나 서식 중인 반달가슴곰은 총 4마리로 모두 덕유산 권역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은 모두 수컷 성체로, 교미시기에 지리산권역으로 복귀했다가 이후 덕유산권역으로 이동해 활동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권역 간 이동에 따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덕유산 권역에도 고정 서식권이 확보되도록 불법 포획장비 등 위협요인을 제거하거나 암컷 개체의 인위적 이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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