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필리핀 동쪽 해상 보이죠? 통상 해수면 온도가 26도 이상이면 태풍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미 29~30도에 달합니다. 태풍 발생의 열적 조건이 충족됐으니 예의주시하고 있죠."
25일 제주 서귀포시 국가태풍센터에서 김동진 예보관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현황판을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 상황은 지난해 이맘때와 유사하다. 동태평양 부근 해수면 온도는 라니냐 영향으로 예년보다 낮고, 필리핀 동쪽의 서태평양 부근은 평년보다 높다. 현황판에는 현재 서태평양 부근에 긴 구름대가 머물고 있는 모습이 또렷하게 나타나 있다. 이 구름대가 점차 태풍으로 발전하면 그중 일부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태풍은 통상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우리나라 쪽으로 올라오는데, 지난해 태풍은 다양한 기압계가 영향을 미치며 진로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함동주 국가태풍센터장은 "올해도 지난해처럼 변칙적 진로를 가진 태풍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지난 한해 동안 세계적으로 발생한 태풍은 총 22개. 그중 3개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는데, 다행히 피해는 크지 않았다.
국가태풍센터 전문가들은 "태풍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2019년에는 1년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이 7개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반면, 이듬해에는 4개가 영향을 미쳤다. 2021년은 이례적으로 7월 태풍이 없었던 해이기도 하다. 작년엔 태풍 진로가 번번이 예상을 벗어난 바람에 예보에 특히 애를 먹었다.
이런 와중에 태풍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행정안전부 재해연보에 따르면 최근 10년(2008~2017년)간 재산 피해를 유발한 주요 원인 중 태풍이 50.2%로 절반이 넘었다. 국제학술지 '내추럴해저드리뷰'는 지구온난화로 2060년에는 태풍과 홍수 피해 규모가 최대 23조 원에 달할 것이라 내다봤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예보정확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태풍 예보정확도가 20% 높아지면 연간 300억 원, 예보선행시간이 20분 단축되면 연간 700억 원 등 총 1,000억 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함 센터장은 "태풍의 72시간 진로를 예보하는 오차가 최근 10년(2010~20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지난해엔 태풍 예보정확도가 미국, 일본보다 약 20% 더 우수했다"고 말했다.
국가태풍센터는 2002년 태풍 '루사'에 이어 이듬해 태풍 '매미'가 우리나라를 할퀴고 지나간 뒤 태풍 예보 전담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돼 2008년 설립됐다. 일단 태풍이 발생하면 이곳에선 관련 정보를 생성하기 위해 6시간 넘게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다.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걸로 예상돼 경계령이 발동되면 2인 2조로 24시간 경계근무에 돌입한다. 김 예보관은 "여름철마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센터는 오는 7월부터 새롭게 선보일 태풍 위험 상세정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에는 태풍의 중심이 어디에 있고, 풍속이 초속 15m 이상일 지역이 어디인지만 제시됐지만, 올해부턴 지역별 최대풍속 수치와 시점까지 지도에 표시된다. 함 센터장은 "태풍 정보를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